
지난 3개월 동안 책상 위에서 나를 괴롭히던 책, 드디어 다 읽었다. 사 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사 놓고는 "다 읽었니? 다 읽었어?" 자꾸만 물으시는 엄마 때문에 괴로웠다. 더구나 나는 곤충 종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개미, 곰 개미, 왕개미, 사냥꾼 개미라든가 병정개미 1호, 3호, 1114호 32332호, 846호처럼 번호가 붙은 이름도 낯설었다. 그래서 엄마께서 읽어라, 할 때만 읽는 척 하다가 책꽂이에 살짝 꽂아 놓았는데, 어느 날 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더니 하루 종일 병정개미 1114호만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미있나? 내 책을 친구가 읽는데 내가 안 읽으면 안 돼지."하는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고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안 읽었으면 후회 할 뻔했다. 내가 가끔 걱정하는 댐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 휴업 일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나와 함께 포천이나 그 주변 지역을 여기 저기 구경하러 다니신다. 어느 날"우리 한탄강 줄기에 있다는 재인 폭포에 다녀올까?" 하시더니 재인 폭포를 찾아 집을 나섰다. 가다 보니 길가에 빨간 글씨가 쓰여 있는 프렌카드 같은 것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차를 세우신 아빠께서 읽어보시더니 "이 지역에 댐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그것을 반대 한다는구나."하셨다.
"그런데 왜 댐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지?"
재인 폭포에 도착 해 보니 폭포의 경치가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가운데 떨어져 내리는 폭포와 그 옆에 또 흘러내리는 폭포, 그리고 주위의 멋진 나무들과 바위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노는 다람쥐들과 아래쪽에 흘러가는 한탄강 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친척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여기 가자고 해야지."하고 생각하며 재인 폭포를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근처의 가게에 들러서 "여기에 댐이 정말 들어서나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내가 본 한탄강과 재인폭포, 근처의 논과 밭, 집과 산까지 모두 물 속에 잠긴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서 댐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구나. 이 아름다운 환경이 물 속에 사라진다니, 반대 할 만도 하지."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내용이 머리에 떠올라 또 걱정스러웠다. 댐 건설을 하면서 물 속에 잠긴 식물들이 썩어 가면서 거기에서 메탄가스가 나오고 그 메탄가스는 소의 트림보다 훨씬 많이 지구를 온난화 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나무와, 산에 있는 식물들이 물 속에 잠겨서 지구를 뜨겁게 하는 가스를 품어 낸다고 생각하니 댐 건설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수 없이 많았다.
그 때는 병정개미 1114호 같은 작은 개미 목숨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댐이 건설되면, 왕국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을 작은 곤충들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이유도 모르고 죽어갈 것은 뻔하다.
이 책을 읽고 엄마께 "엄마, 불개미 떼가 왕개미 땅을 빼앗으려고 쳐들어 왔는데요, 그 때 댐에 물이 차기 시작해서 불개미 왕국도 왕개미 왕국도 모두 물에 잠겨 개미들이 몽땅 죽고 병정개미 1114호만 나뭇잎 덕분에 살아서 떠내려갔대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엄마께서는 "지구는 자꾸 더워지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천재지변은 일어나고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언제 지구가 멸망할지 모르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챙기려고 욕심부리는 모습이 꼭 댐에서 죽은 불개미들을 닮았구나." 라고 하셨다.
2년 정도 세상을 산 병정개미 1호가 오래 살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개미의 생명은 길지 않은 것 같다. 용감하지만 생각이 짧은 젊은 병정개미 1114호에 비해서 병정개미 1호는 생각이 깊고 지혜로웠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래서 병정개미 1호가 생각한대로 지금 살고 있던 왕국을 버리고 다른 땅으로 옮겨갔더라면 다 함께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여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지혜로운 병정개미 1호가 불개미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왕국은 물에 잠겨, 굴참나무 숲의 모든 개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남은 병정개미 1114호가 다시 왕국을 이루어서 살게 되면 병정개미 1호에게 배웠던 지혜와 경험으로 왕국을 잘 지켜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잔소리 쟁이라고 싫어 할 것이 아니라, 병정개미 1호처럼 세상을 나보다 오래 사신 분으로서 나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며칠 전에 부모님께 졸라서 재인폭포에 다시 다녀왔다.
댐이 들어선다는 재인 폭포 근처에 살고 있는 모든 야생 동물이나 곤충들에게 댐이 들어설 것이니 빨리 이사 가라고 얘기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인폭포 입구에서부터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군인 아저씨들이 못 들어가게 막고 있었다.
재인폭포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개미들아, 다람쥐들아 이곳에 댐이 들어선대. 빨리 이사가." 하고 소리라도 외치고 오면 작은 생명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할 줄 알았는데, 이사 가라는 얘기도 해 줄 수 없고, 정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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