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내수불황으로 해외거래가 뜸하다. 불황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짜증난다. 거래관계란 묘하다. 거래가 있으면 연락이 심심찮게 오가고 거래가 없으면 가뭄에 콩 나듯 무심하다. 일본도 장기불황으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렵단다.
나와 거래를 하는 일본 회사는 오사카에 있는 티타늄제조 및 원자재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중소기업이다. 나와 거래관계로 맺은 인연은 각별하다. 1992년 무역회사 다닐 때 처음으로 가는 일본 출장길은 마냥 설렜다. 사장 이하 전 직원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회사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전력을 기울이는 직원들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현장 기술과 생산 직종에 일하는 사람은 중장년층이다.
그때만 해도 티타늄은 나에게 생소했다. 일본은 유럽, 러시아 등과 함께 티타늄 생산국이다. 그래서 티타늄 제조기술과 응용분야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티타늄의 특성은 가볍고 녹 쓸지 않고 강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응용분야도 다양하다. 출장 때 2주간 체류하면서 용접기술도 배워보고 티타늄에 관한 정보도 접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 후 몇 차례 일본에 출장을 다녀오곤 했다. 일본에서도 매년 한 차례 우리 회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 맺은 신뢰와 우정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인연이다. 요 며칠 견적만 요청하고 주문을 넣지 못해 미안하던 참에 연락도 못 했다. 그런데 어제 일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직원의 상냥한 목소리다. 회사로 방문해도 되는지 묻는 것이었다. 우리 여직원이 머뭇거리다가 그날은 사장님 항암주사 맞으러 병원 가는 날이라 곤란할 것 같다며 비밀이야기를 해버렸다. 일본 여직원은 항암주사에 깜짝 놀라며 다시 전화하겠다면 황급히 끊었다.
얼마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꼭 방문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사장님의 명령이란다. 더더욱 놀란 것은 그쪽 사장님도 작년에 암 판정을 받고 절제 수술하고 몇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고 현재는 건강이 많이 좋아져 회사도 잘 보살피고 긍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샤죠상’ 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좋은 일이 아니라서 서로 알리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분은 칠순을 넘은 연세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이 있고 정 많은 사장이다. 우리가 출장가면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시내구경도 직접 시켜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건강하게 보이신 분이 암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지만, 술 좋아하는 사장님, 술 때문에 병이 생겼나, 이젠 술도 끊었단다.
온다는 시간이 좀 지나 일본에서 손님이 왔다. 여직원이 御見舞[おみまい]*을 전하기 위해 일부러 출장을 온 것이다. 사장님이 나에게 전한 말은 “나는 몇 번 수술하고 몇 군데 전이되고 해도 잘 견뎌내고 있는데 김 사장은 무슨 걱정이냐”며 여직원 편으로 사장님 구두메시지를 전해왔다. 이런 와병 중에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며 죄송할 뿐이다.
나도 6월 마지막 주에 8개월(항암 기간 6개월, 휴식기간2개월)의 길었던 항암주사가 끝났다. 부작용 없이 잘 견뎌냈다. 결과도 좋다. 지금도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지만, 지금부터는 할 일이 많아졌다. 일도 열심히 하고 산행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올해가 다가가지 전 일본에 가 사장님을 뵈어야겠다. 하루빨리 사장님의 쾌차를 기원하면서 사장님과 회사에서 보내준 御見舞[おみまい]를 바라본다. 내가 이런 위문과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나 하고, 서로 맺은 좋은 인연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전달받은 ‘어견무(御見舞)’봉투 하나에도 마음이 깃든 정성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어견무를 어디에 쓸지 생각 중이다. 잇단 외환통장에 넣어 두고 일본 방문을 생각하고 있다. 그때까지 사장님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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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견무(御見舞[おみまい])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병문안 때 위문품 대신 현금을 가져가기도 하는데 이때 御見舞[おみまい]라는 문구와 함께 흔히 노시가미(のしかみ) 라는 축기(祝儀)봉투를 사용한다. 또한, 리본모양봉투는 초무스비(ちょうむすび)라하고 몇 번 있어도 좋은 경사(일반적인 경사)에 쓰이고, 무스비기리(むすびきり)라는 봉투는 한번 묶으면 절대 풀리지 않는다 하여 결혼이나 조사 등 두 번 있지 않기를 바랄 때에 쓰인다. 일본에서 결혼식 초대에 가게 될 때에는 무스비기리(むすびきり)를 사용하면 된다. 일본은 선물문화가 잘 발달하여 봉투 하나에도 정성이 듬뿍 들어 있어 받은 사람에게는 기쁨이 가득하다. 퇴원 후 병문안 와준 사람에게는 답례로 편지나 엽서를 보내는 데 이것을 ‘內祝’[うちいわい]이라 한다. 답례를 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처럼 일본 사람은 은혜를 받으면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상식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