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가는 포천의 예술인③]-포천예총회장 김 진 동

▲김진동 회장

본래 성현들의 유풍과 전통을 가르키던 ‘풍류’라는 말은 삶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사는 지혜와 멋을 아우른다. 각박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풍류’라는 어감에서 배어 나오는 분위기는 심히 고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베레모를 비스듬히 눌러 쓴 서예가 외길 김진동 씨는 “가슴에 여러 가지 것들을 담아 그것들이 소용돌이 쳐서 격정을 쏟아내야 하는 것이 풍류야”라며 “작가의 가슴에 풍류가 없으면 작품에도 풍류가 없지”라고 당당하게 내뱉는다.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엿보면 이 발언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대개의 한글 서체는 사각형의 틀 속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는데 비해 그의 호를 따 개발한 ‘외길체’는 정형화된 것이 없다. 따라서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수채화를 그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회화에서 이용되는 여백처리의 기법을 서예에 동원해 회화적인 공간구성을 연출하는 것이다. 80년도 이후 본격적으로 붓을 잡은 후 근 10년을 먹을 갈고 연구하며 개발했다.
“고정관념에 찌든 사람들에게 ‘잘 썼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보통 사람의 안목으로 못 보거든. 나중에 혹여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한 번은 의성의 고은사 주지가 그에게 종각 현판을 써 달라는 부탁을 하길래 “왜 나에게 맡기십니까”하니 “시주님 글씨에는 때가 안 묻었습디다”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국전 대상보다 내겐 기분 좋은 일이고 엄청난 행운”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서예의 글귀도 창작에 중점을 둔다. “선현들의 말씀도 훌륭하지만 자신이 글을 지어서 쓸 때 더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게 있다”는 것. 그가 즐겨 쓰는 글귀는 ‘삶이 뭐 별 게겠소. 그냥 그렇게 사는 거라우’.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삶의 여유가 배어 나온다.
요즘 서예를 배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글귀 창작은커녕 글씨 쓰는 재주만 익히고 기능에 대한 욕망만 채우려고 하고 있어 그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는 “내가 써 준 글씨 하나로 받은 사람의 마음이 순화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라며 “내가 죽으면 내 작품은 사회의 것인데 기(氣)가 다 할 때까지 써야지”라고 다짐한다.
또 그는 아직까지 그가 잡은 붓은 어느 장사가 와도 못 뽑아간다고 말한다.
“겉모습은 한없이 부드러운 서체지만 속에서는 더없이 강한 기운이 용트림하듯 꿈틀거리는 데 누가 와서 내 붓을 뽑아갈 수 있겠어?”
전시회가 끝난 뒤에 지필묵 개나리 봇짐에 싸고 지인들을 방문하며 글 쓰고, 술 한 잔 얻어먹으며 살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는 그의 회한을 들으며 그래도 나름의 풍류를 즐기며 여유를 가지고 사신 분이 아닌가 하는 부러움 반 질시 반의 감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