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禁盜)와 금도(襟度)는 발음은 같으나 다른 뜻을 지닌 말이다. ‘금도를 넘어선 발언에 유감을 표시한다’는 말이 세간(世間)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때 말하는 금도는 禁盜가 아니라 襟度이다. 襟은 옷의 뜻인 衣와 금하다의 뜻인 금(禁)의 합자로 신체 부위에서 가슴이 노출되는 것을 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옷깃’이라는 데서 ‘가슴’ ‘마음’이라는 뜻이 자연스럽게 파생(派生)되었다. 글자대로 풀이하면 ‘마음으로 헤아리다’라는 뜻으로 남의 사정을 마음으로 잘 헤아려 포용하는 도량(度量)을 말한다. 이에 반해 禁盜는 도적질을 금한다는 것이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襟度는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고 禁盜는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것이다. 갑(甲)질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도적(盜賊)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 못하는 것은 내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고 나에게 잘하는 것은 내가 잘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을 성찰(省察)해야 한다. 왜 나는 쏙 빼놓고 상대(相對)만을 탓하는가. 내가 있어 상대가 있는 것이다. 원인제공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무례(無禮)하게 굴면 자신의 품격만 떨어뜨리게 된다. 명심(銘心)하기 바란다.
공사(公私) 구별은 사회생활의 기본(基本)이다. 공적 행사와 사적 모임은 어법(語法)부터가 달라야 한다. 일반 국민에게 이는 상식(常識)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치 지도자들이 거꾸로 상식을 내동댕이치고 있다.
공개되는 TV카메라 앞에서 형님 선배라고 부르는가 하면 기자들을 향해 반말을 해대기도 한다.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행위이다. 공개적인 반말은 한국 정치의 퇴행성(退行性)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무례(無禮)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취재(取材)하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기자에게 반말을 하는 건 국민에게 반말하는 것이다. 이런 반말은 일부 정치인의 습관적인 오만(傲慢)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취재하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의 자존심(自尊心)을 업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부끄러운 장면이 한들이 아니다. 정치인은 서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데 기자들은 바닥에 앉는다. 방바닥이나 복도 심지어 집 앞 땅바닥에 앉는다. 언론의 취재환경이 열악(劣惡)해진 건 사실이다.
신문 방송 인터넷이 많아지고 기자 수도 급격히 늘었다. 양질의 취재 질서가 매우 어려운 건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일수록 언론에 대한 정치인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은가. 나이가 어리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이크를 들이댄다고, 바닥에 앉아 있다고, 반말을 해서는 안 된다. 갑(甲)질을 해서는 안 된다.
물건 훔치는 것만이 도적이 아니다. 남의 공적(功績)을 가로채는 것도 도적이다. 남의 아이디어(idea)를 가로채는 것도 도적이다. 도선(盜善)이다. 얼마나 많은 대(大) 기업들이 도선을 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위정자(爲政者)들이 갑질을 하고 있는가. 천도(天道)의 길을 가야 한다. “하늘의 길은 남는 곳에서 덜어내고 모자라는 곳을 보태준다(天之道 損有餘補不足).”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인도(人道)의 길을 간다. “사람은 모자라는 곳에서 덜어내 이미 남는 곳에 보태준다(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모자라는 곳은 더 모자라고 남는 곳은 더 남게 되어 결국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되고 만다.
각기 자기의 입장에서만 보려 하지 말고 진정 어느 것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상대의 시각도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나를 낮추고 같이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동고동락(同苦同樂)하라는 말이다. 광이불요(光而不耀)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 으시대지 말라는 말이다. 오만하지 말고 갑질하지 말라는 말이다.
언론은 경쟁에 묻혀서, 젊은 지도자들은 감투에 들떠서, 오래된 정치인들은 구습과 오만에 젖어서 예의와 절도(節度)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기개와 자존심(自尊心)이 사라지고 있다. 정치 풍토에서 진정한 형님과 선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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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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