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화창한 날씨에 가까운 산에는 연초록 잎새들이 앞다퉈 나오는 바람에 회색 빛의 삭막함을 아름답게 변모시켰다. 숨쉴 때마다 나무에서 풍기는 생명수처럼 산뜻함이 기분을 황홀케 한다.
생명의 소중함은 돌 틈바구니 속에서도 번식의 능력을 다하기 위해 힘차게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다.
죽음 앞에 용감한 자 누가 있으며 이유 없는 가족의 죽음 앞에 원통하지 않은 이 어디 있으리요. 세상 사람들을 경악케 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뉴스에 뜨면서 범인이 동양계라고 했을 때 순간적으로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중국이나 일본 그런 쪽이 아닐까?
조마조마한 우려 속에 범인은 안타깝게도 한국인 이민자였다니 가슴속에서 산이 무너져 내리듯 답답한 고통이 떠나질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민들의 관심사가 어떻게 말할까 초조했는데 상상외로 그들은 포용과 관용으로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여덟 살에 이민 온 조승희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낮선 땅에 이민 온 그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미국에 있다. 가해자 가족들이 엄청난 고통에서 잘 헤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던가? 미국민의 다수의 사람들이 한국인이 죄의식을 갖지 말라고 하는 진심 어린 충고를 우리는 그냥 듣고 넘기기엔 너무도 감동적이다. 울컥 쏟아지는 눈물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서른 두 명의 죄 없는 죽음을 당한 영혼 앞에 깊이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다. 또한 불쌍한 가해자인 한국인에게 똑같이 영혼을 위로해준 대학생들도 과연 미국의 젊은이들이 세계강국의 젊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지 몰라도 미국에 있는 우리동포들은 그 강한 충격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미국민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대열에 참여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의지에 강한 한국인이라고 했다. 수많은 인종이 함께 공유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노력은 우리 땅에서 살 때보다 더 힘들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유학을 가있고 현지적응에 익숙지 못해 행여 잘못될까 더 큰 고민으로 남게될까 염려스러운 것은 미국에 가족이나 친지를 보낸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일 것이다.
사람들은 5․60년대의 가난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가난했기에 불편한 점은 있었겠지만 요란한 세상 때문에 공포에 떨지는 않았으니까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세상 만들기에 세계정상들이 마음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저 넓은 창공에 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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