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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만의 왕릉 이야기 ⑫ - 광해군왕릉]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15일
 
< 강경만/ 공인노무사 >
 
1. 광해군묘 답사를 나서며 (답사일 : 2026. 10. 13)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말하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 작은 걸음 큰 울림, 왕릉답사! 오늘은 역사에서 많이 배우지 않은 광해군묘를 답사합니다. 남양주 사릉에 있는 광해군묘 지금 시작합니다.

2. 광해군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 소재지에 있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과 왕비 문화유씨의 능이다. 광해군은 초기에는 빈민구제와 국방에 주력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1623년(인조 1) 3월 광해군으로 강봉되었으며, 같은 해 3월 폐비유씨와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태안을 거쳐 제주도로 이배(移配)되었다.

1641년 7월 제주도에서 죽어 그 곳에 장사지냈다가 1643년 10월에 지금의 묘소로 천장 하였다. 문성군부인 유씨는 지돈녕부사 유자신(自新)의 딸로 1576년에 태어나 1587년 군부인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세자빈으로 진봉되었으며, 1608년(광해군 즉위년) 왕비로 진봉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과 함께 폐출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으며 그해 10월 강화도에서 죽어 양주군 적성동에 장사지냈다가 광해군이 죽은 뒤 같은 묘역에 천장하였다. 비석, 혼유석, 향로석이 쌍분 앞에 각기 설치되어 있으며 석망주 1쌍, 문석인 1쌍이 서로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다.

광해군 묘비 전면에 ‘광해군지묘(光海君之墓)’, 후면에 ‘신사칠월초일일병졸어제주명철조삼일(辛巳七月初 一日病卒於濟州命輟朝三日)’이라 새겨져 있다.

3. 광해군, 그는 누구인가?
이름은 이혼(李琿), 본관 전주, 선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공빈 김씨이며, 비는 판윤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세자책봉 문제로 형 임해군과 갈등을 빚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국난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피난지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선조와 함께 의주로 피난을 가다가 국란에 대비하여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영변(寧邊)에서 갈라졌다. 선조는 의주로 향하고, 광해군 은 권섭국사(權攝國事)의 직위를 맡아 분조(分朝)의 책임자로  평안도 지역으로 출발하였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를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인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북관대첩비에 기록된 충의공 농포 정중부 장군 등 의병들의 활동이 있었다.

한편, 선조는 전쟁이 끝난 후  인목왕후 소생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올라 전후 복구사업을 왕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1623년 김류, 이귀, 이괄, 최명길, 김자점 등 서인이 주도하여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에 얼마간 유배된 후 다시 정략적으로 제주도로 이배 되었다가 1641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로 강화도에 유배지가 있고 제주도 행원포구에 광해 유배지 기착지와 광해 유배 적소터가 있다.

4.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 이혼은 선조와 공빈김씨의 후궁 출신 왕이지만,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한 왕이였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대사,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들~ 대체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뭐라? 이 땅이 오랑캐에게 짓밟혀도 상관없다고? 명나라 황제가 그리 좋으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시던가!
 
그깟 사대의 명분이 뭐요?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 지언정 내 그들을 살리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갑절 백갑절 더 소중하오!" - 光海(광해) 이혼 -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 드리리다!" - 蛟山(교산) 허균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中 광해 이혼과 교산 허균의 명대사, 혹시 이 영화 못 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강추합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의 주도 세력이었던 서인들은 폐모살제, 즉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과 명과 후금 사이의 강홍립의 중립 실리외교는 임란 때 파병을 해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반의리 라는 부도덕성을 부각시켜 반정의 명분으로 삼았다. 반정의 사유가 패륜과 사대외교 그리고 토목공사란 말인가?

5. 광해군의 업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영창대군 출생 후 힘겹게 왕위를 계승한 광해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은 7년간의 전쟁 임진왜란과 정묘왜란 양란, 전란의 상처를 회복하여 궁궐 조성, 세제개편, 역병예방, 실용외교 등등 민생안정을 시급히 이루는 일이었다.

(1) 양전사업과 대동법 실시
광해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가 양전사업이다. 임란 직후 토지를 누가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와
실제 작황을 파악하여 세금을 균등하게 받는 제도이다. 오리 이원익을 통한 대동법의 시행이다.

(2) 동의보감 편찬
전란과 기근으로 질병과 역병이 만연하여 백성들의 인명 손실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허준으로 하여금 '동의보감'을 편찬케 하여 보급하였다.

(3) 냉철한 실리외교, 실용외교
광해의 능력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가 실리적 외교정책이다. 분조(分朝)의권섭국사(權攝國事)로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모아 의병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외교적 안정을 유지하려고 강홍립을 통한 중립외교를 펼쳤다.

그 따위 폐모살제와 명과의 사대의리 때문이라면 왕과 조선이란 나라가 왜 필요한가? 그냥 종으로 살지? 이방원의 왕자의 난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은? 중종반정은? 인조반정은?

6. 광해묘와 어머니, 형
1641년 제주도에서 사망한 광해군은 <光海君之墓>라는 묘호로 찾는 이도 별로 없고 찾아가도 참배할 수도 없이 남양주시 사릉 영락교회 묘지 옆에 쓸쓸히 묻혀 있다. 릉이라고 하기보다 그냥 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친 공빈 김씨의 성묘가 묘소 앞에 있음은 다행이겠지만? 게다가 좋든 싫든 동복형 임해군의 묘도 근처에 있다.

1623년 광해군과 함께 폐출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으며 그해 10월 강화도에서 죽어 양주군 적성동에 장사지냈다가 광해군이 죽은 뒤 같은 묘역에 천장하였다. 비석, 혼유석, 향로석이 쌍분 앞에 각기 설치되어 있으며 석망주 1쌍, 문석인 1쌍이 서로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다.

7. 왕릉답사를 마치며
이것이 과연 패자의 역사란 말인가? 인조반정의 주역 도움으로 어느 궁녀가 쓴 <계축일기>에 등장하는 국정농단 여인, 상궁 김개시의 역할은 광해군의 눈과 귀를 멀게하고 역사를 퇴보시겼다. 그리고 영화 감독들에게 힘껏 외친다. 왜 광해 소재로 영화 만들어 500만 관객 동원해서 돈 많이 벌었으면 수익금 1% 정도는 기부하여 '광해알리기 사업'에 힘썼으면 한다. 꼭 실천하길 바란다.

코로나19로 힘든데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더위 잘 극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주현미 왈, 잠깐만 잠깐만, 그래도 흔적은 남기고 가세요.

최초답사일 : 2021. 8. 7
재답사일 : 2026. 10. 13.

< 강경만 /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 포천신문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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