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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의 플러스에세이 32] 일터의 손으로 시를 읽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24일
ⓒ 포천신문

기계를 돌리던 손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한 기업의 경쟁력보다 더 단단한 것을 보았다. 사람의 마음이었다.

비가 그친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렸다. 폭염과 소나기가 번갈아 찾아오던 날, 제부도 바다시인학교 전국 시 낭송 대회가 열렸다. 그날 나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부성에버텍(대표, 윤성순)의 ‘시 낭송 사랑방’ 김두연 이사였다. 부성에버텍은 1990년 설립된 기업으로,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서비스를 목표로 생산 현장에서 고객의 요구에 응답해 온 회사다. 

‘고객과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에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라는 기업 이념처럼, 제품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납품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내가 더욱 인상 깊게 본 것은 제품이 아니었다. 그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부성에버텍의 직원들은 생산 현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제품의 품질을 책임진다. 그러나 퇴근 후에는 기계의 소리를 내려놓고 시의 숨결을 듣는다. 2024년 3월, 일곱 명으로 시작한 ‘시낭송 사랑방(강사, 김은희)’은 한 달에 두 번, 수요일마다 작업을 마친 뒤 모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를 읽고, 낭송을 연습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어느덧 3년이 되었다. 나는 이 작은 모임이 한 기업의 문화 가운데서 자라났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기업은 제품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 사람도 함께 자란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제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이 건강해야 현장도 오래 건강할 수 있다. 부성에버텍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발안천 수달 서식지 보호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다가왔다. 기업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자연을 함께 살피려는 마음. 그 마음이 ‘시낭송 사랑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사람을 위한 기업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날 함께하던 여섯 명의 회원을 바라보며 그 생각을 더욱 깊이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손에는 세월이 남는다. 기계를 다루며 굳어진 손,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도 오차를 줄이기 위해 애써온 손, 하루의 책임을 묵묵히 견뎌온 손이다. 그 손이 무대에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그 장면이 아름다웠다. 일터에서는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시 앞에서는 잠시 마음의 신발을 벗어놓는 사람들. 그들에게 시는 취미 이상의 것이었을 것이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날 본선에 진출한 배순진 님은 유안진 시인의 「자화상」을 낭송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결국 때 묻고 흔들리며 흘러가는 삶이라는 메시지가 깊이 남았다. 그 시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진실보다 체면을 앞세우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감추며 살아간다. 시는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배순진 님의 낭송은 그 질문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기계를 돌리고 제품을 만들던 사람이 이제는 한 편의 시를 자신의 목소리로 건네고 있었다. 그 순간 시가 멀리 있는 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란 자신의 삶을 오래 바라본 사람이 비로소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흘린 땀도 시가 되고, 묵묵히 견딘 시간이 시가 되고,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시 한 편을 연습한 마음도 시가 된다. 그래서 그의 낭송은 유난히 따뜻했다. 잘 다듬어진 목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 안에 살아온 시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부도의 밤이 깊어갈수록 바다는 고요해졌다. 늦은 시간까지 ‘시율’ 회원들과 시를 나누며 서로의 낭송에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현장에서 살아왔지만 시 한 편 앞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치열하게, 쉼에서는 편안하게. 그것은 어쩌면 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작은 원칙인지도 모른다.

기계를 돌리는 손에도 쉼이 필요하고, 제품을 만드는 마음에도 시가 필요하다. 그날 제부도에서 나는 한 기업의 제품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을 보았다. 사람을 키우는 기업,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 기계를 돌리던 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하루가 천천히 시가 되어 흘러나왔다.

ⓒ 포천신문
ⓒ 포천신문

2026년 8월 24일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 공모전 우수상 수상.(2021)
제6회 대한민국 다문화 인권문학상 공모전 동상 수상.(2025)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 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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