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 봉은사에는 '불괴비첩(不壞碑帖)'이라는 소중한 화첩이 전해집니다. 돌에 새긴 비석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죽어가는 이를 구제한 공덕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不壞)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화첩의 탄생 배경은 100여 년 전인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강 범람으로 송파, 잠실, 뚝섬 일대가 바다처럼 변했던 절체절명의 순간,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 (1875~1933)은 사찰 재정을 털어 뱃사공들에게 사람을 구할 때마다 후한 배삯을 내걸었습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스님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구출한 목숨은 무려 708명. 스님은 봉은사를 피난소로 개방해 식량과 옷, 치료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목숨을 건 활인(活人)에 감동한 당대의 지식인과 독립운동가, 예술가들이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모은 시·서·화가 바로 불괴비첩 (不壞碑帖)입니다. 사부대중과 주민들은 1929년 봉은사 경내에 작은 '수해구제 공덕비'를 세워 그 은혜를 돌에도 새겨 놓았습니다. 청호 스님이 대홍수 속에서 708명의 생명을 구한 지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작금, 우리는 또 한 번 봉은사에서 자비구제의 정신을 실천했던 명진 스님의 열반 소식을 접했습니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 (2006~2010년)로 재임과 동시에 사찰은 약자와 동행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스님은 취임 직후 사찰 재정을 100%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인 보시금을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으로 돌렸습니다. 용산참사 현장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천안함 희생 장병 유가족을 찾아 눈물을 닦아주었고, 사회복지법인 '봉은'을 통해 독거노인과 다문화가정, 구룡마을 빈민촌 등 복지 사각지대를 보살폈습니다. 이는 100년 전 청호 스님이 보여준 봉은사의 자비구제 전통을 현대 도심 사찰의 방식으로 되살려낸 실천이었습니다.
명진 스님의 열반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각층의 안타까움과 추모글이 SNS와 미디어를 덮치고 있습니다. 100년 전 종교와 신분을 초월해 청호 스님의 공덕을 기리며 엮어낸 종이 화첩이 불괴비첩(不壞碑帖)이었다면, 오늘날 디지털 공간을 채우는 뜨거운 추모의 물결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불괴비첩(不壞碑帖)입니다.
건물이 화려해지고 재정이 풍부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곤경에 처한 이웃을 위해 절의 문을 열고 기꺼이 손을 내미는 자비의 실천입니다. 명진 스님이 남긴 마지막 발자취와 함께, 봉은사가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사회적 약자의 쉼터가 되어주었던 그 거룩한 전통이 재조명 받는 이유입니다. 삼가 명진스님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기원(祈願)합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