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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162

부재(不在)의 스승과 나누는 대화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12월 23일
 
< 김남영 / 동두천시 노인대학 학장 >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이란? 관념적인 마음의 내부이면서 하나의 생각을 일구고 담아내는 구체적인 그릇 즉, 마음 밭 입니다. 신명과 관조를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여 얻어지는 정신의 산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작 글씨로 채워져 있는 종이 뭉치에 빠져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느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잔디밭에서 22명이 작은 공 하나를 차려고 발버둥 치는 행위에 수십억 명이 열광하고, TV앞에 모여 앉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지 확신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민하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꺼죠? 이 중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총합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표절과 복제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남의 문장을 내 것인 양 포장하고, 타인의 생각을 교묘히 짜깁기하여 지식인인 척 유세 떠는 일이 일상이 된 흉내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진정으로 모방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껍데기를 베끼는 기술이 아니라, 그가 도달했던 고통스러운 교학(敎學)의 경지를 내 몸에 새기는 고행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생은 늘 참조할 모델이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나태해질 때마다 등 뒤에서 서늘한 죽비소리를 내려쳐 줄 실재하는 스승, 창의적 긴장감이 느슨해질 때마다 나의 지적 안일함을 꾸짖어 줄 참조인간의 부재는 늘 뼈아픈 갈증이었습니다. 나를 부단히 채근하고 계고(戒告)할 대상이 곁에 없다는 것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고독과도 같았습니다.
​
​하지만 찬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요즘같은 한겨울, 고요히 앉아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만큼은 그 고독의 색깔이 바뀝니다. 비록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스승은 없으나, 수 세기 전 혹은 먼 나라에서 먼저 길을 걸어갔던 선생들이 문장 사이사이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스승이 없다는 탄식은, 어쩌면 내가 충분히 읽지 않았다는 자백일지도 모릅니다.

​창밖의 풍경이 눈 덮인 정적이든, 차가운 도시의 불빛이든 상관없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책 속의 그들과 소리 없는 담소를 나누는 시간. 그들의 치열했던 고뇌를 엿보고 나의 비겁함을 고백하는 그 찰나의 연결감이야말로, 이 척박한 삶을 살만 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
진정한 스승을 닮아가는 쾌락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장을 훔치는 도둑의 손길이 아니라, 그 문장이 태어난 고독의 깊이를 이해하려는 구도자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비록 실제적인 스승은 부재할지라도, 책 속의 선생들이 던지는 준엄한 경고와 따뜻한 격려를 길잡이 삼아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뎌 봅니다.

< 김남영 / 동두천시 노인대학 학장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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