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나 리자’나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해부학자이자 토목공학자, 군사 기술자였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천문학, 지질학, 광학, 수학 등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갖춘 지식인이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술한 그의 노트에 있는 수만 쪽의 기록은 단지 한 천재의 개인적 실험이 아니라, 근대 과학과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대한 지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작은 마을 빈치(Vinci)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빈치’는 그의 성(姓)이 아니라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표기였다. 피렌체(Firenze) 시민권이 없어 정규 라틴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지만, 바로 그 점이 그를 중세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교과서 대신 자연을 스승으로 삼았고, 직접 보고 측정하고 그리는 ‘현장 기반의 학습’에 의존했다. 제도 밖에서 얻은 경험은 오히려 그의 사고를 더 자유롭고 넓게 만들었다. 정치적 권위나 종교적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자세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술하려는 태도로 이어졌다.
14세 무렵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의 거장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35–1488)의 공방에 들어갔다. 이곳은 조각, 금세공, 무대 미술, 건축, 기계 제작 등이 함께 이루어지는 르네상스 최고의 융합 예술 공간이었다. 그는 10여 년 동안 도제교육을 받으며 재료의 질감, 금속의 성질, 기계장치의 구조 등을 손으로 익혔다. 이러한 체험적 배움은 훗날 그가 설계한 비행기, 잠수복, 각종 기계장치의 밑거름이 되었다.
레오나르도의 회화는 그의 시각적 사고력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영역이다. ‘모나 리자’의 스푸마토(sfumato)는 빛과 공기의 흐름을 연구한 실험적 결과였다. ‘최후의 만찬’의 원근법 구성은 심리적 균형과 공간 구조의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해부를 했고, 해부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시신 30구 이상을 해부하며 근육·골격·혈관을 정밀하게 기록했으며, 이러한 해부도는 19세기까지 가장 정확한 자료로 평가되었다.
레오나르도의 재능은 저절로 피어난 것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적 토양, 특히 메디치(Medici) 가문이 피렌체에서 조성한 인문·예술 환경은 비정형적 학습자였던 그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다만 레오나르도 자신이 메디치가의 직접적 후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메디치가의 후원이 활발하던 시기에 그는 피렌체를 떠났고, 새로운 후원자를 밀라노에서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 1452–1508)의 후원을 받아 다양한 실험과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루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예술가이자 군사 기술자로 기용했으며, 이는 그의 융합적인 역량이 실현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레오나르도의 진정한 위대함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을 통합하려는 태도에 있었다. 르네상스가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예술·학문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자유로운 사고를 장려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일정한 안정과 함께 문화·예술에 대한 과감한 정책적 투자, 예술가와 연구자에 대한 장기 지원, 창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 지역 기반 문화 생태계 강화가 필요하다.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사회 전체의 창의성이 넓어질 것이다.
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