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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301] 예술인 황행일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4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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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왕족이었던) 이해조(李海朝) 선생 이후, 내 고향 포천에는 이렇다 할 문인(文人)이 없어 늘 허전하였다. 그러나 포천의 ‘도골선풍(道骨仙風)’의 시인이자 포천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봉래 양사언 선생의 3형제와 아드님 ‘감호’가 있어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살았고, 척제 이서구 선생의 ‘영평천 곧은 낚시 이야기’로 내 고향을 자랑하며 살았던 필자였다.

그런데 포천문화원을 창설했던 최종구 초대원장께서 하루는 필자를 보고 함박꽃 웃음을 웃으며 말하는데, 마치 금광(金鑛)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나, 보물을 하나 얻었어. 예비역 고급 장교인데 현직 교사로 다재다능(多才多能)한 분이야. 회화에다 판화, 연극 등등 못 하는 예술 분야가 없어.”

그 후, ‘황봉’은 포천문화원을 박선 위에 올려놓는데 큰 힘이 되었다. 60년대 초, 명문 용산고교 시절 당시,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입선할 정도로 유능한 예술인이었다. 군문에 입대하여 현역 장교의 몸으로 군무에 바쁜 몸인데도 지방도시를 깜짝 놀라게 개인전과 종합전을 열만치 예술혼을 청춘의 숲에서 불태운 인물이었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내 고향 포천의 문화원 발전에 초석이었으며, 포천 초유(初有)의 예술단체를 창설, 유지 발전시켰던 인물이었다.

포천예술인동우회, 포천미술협회, 포천연극협회, 한국문인협회 포천지부, ‘포천문화’ 및 ‘포천문화사랑’ 등은 황봉이 창설·육성한 모임으로, 포천 문화 불모지(不毛地)에 황봉의 힘으로 싹을 틔우고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웠다면 거짓말일까?

필자가 체신청(지금의 정보통신부)에서 발행하는 잡지 ‘가는 정 오는 정’에다 ‘황봉’, ‘외길’, ‘왕방초’, ‘금암’ 등 포천의 예술인을 소개하는 이야기를 집필했을 때, 포천의 젊은이들로부터 몇 통의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내 고향 포천에도 그런 예술인들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 후 황봉은 관객보다 출연배우가 더 많은 연극무대를 연출하여 가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가 하면, 독창적인 판화의 세계로 포천의 예술인들을 거리낌 없이 앞장서 이끌었으며, 중앙 무대로 이끌었다. 지금은 미술·연극·문학계의 원로로서 포천예술연구회 회장과 중앙예술인 단체의 자문역과 고문직으로 신진을 지도하고 있다.

70, 80년대 포천에서 백일장을 열어도 변변한 문인 심사위원 하나 포천 출신으로 어려웠던 시절, 쌓아두었던 예술의 향기를 불태웠던 황봉은 고향이 포천은 아니면서도 ‘진정 포천인’으로 기지리에다 작업실을 만들고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뜨거운 포천 사랑의 마음이 영원하기를 빌기로 하자.

현운 김창종 / 수필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4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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