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우리의 소원(所願)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이 땅에 풍미(風靡)했었다. 소원과 비슷한 말에 소망(素望)이란 말이 있다. 소원과 소망은 둘 다 ‘바란다’는 뜻이 들어 있는 말이다. 무슨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쓰임새는 다르다. 소원은 대중적(大衆的)이고 포괄적(包括的)이고 절대적(絶對的)인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것이고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 이상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소망은 그게 아니다. 소망은 개인적(個人的)이고 제한적(制限的)이고 상대적(相對的)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하나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소망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또 누구에게는 간절하나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이라 말하는 것이다.
소망이라는 말은 희망(希望)과도 통하는 말이다. 희망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고 미래를 밝게 전망(展望)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可能性)을 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보일 때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희망은 하나의 비전(vision)이다.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絶望)이다. 희망이 끊겼다는 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한눈팔고 게으름 피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한눈팔지 않고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는 것이다. 갈망(渴望)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갈망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견선여갈(見善如渴)이란 말이 있다.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본 듯 주저하지 말라는 말이다.
선업(善業)을 하겠다는 원(願)의 극대화(極大化)가 바로 소원이다. 원을 크게 세우면 소원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작으면 소망이 되는 것이다. 흔히들 새해 벽두에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所願成就)하세요’라고 새해 인사를 한다. 이때 말하는 소원성취는 개인적인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소원성취도 중요하다. 허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위한 소원성취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대통령의 말씀이 회자(膾炙)되는 이유이다.
새해 벽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염원(念願)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모두 통일이라는 원대한 소원을 가슴 깊이 품어야 한다. 그리고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옥중에서 밝힌 만국평화(萬國平和)시대를 열어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意志)로 관철해야 한다.
혹자는 한반도(韓半島)를 4강의 교차점(交叉點)으로 본다. 열강의 각축장(角逐場)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역사(歷史)를 되돌아보면 그 같은 사실을 부인(否認)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한반도가 물리적(物理的) 거리는 짧으나 기상상(氣象上)의 거리는 멀다. 한반도 기상변화(氣象變化)의 폭은 미국 대륙을 능가(凌駕)한다. 이 같은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반도는 응축(凝縮)된 땅이라는 것이다. 4강의 교차점이 아니라 4강의 중심점(中心點)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옛 성현(聖賢)들이 이 땅을 간방(艮方)이라 불렀고 간방의 특성을 시어간(始於艮) 종어간(終於艮)이라 한 것이다. 간방에서 시작하고 간방에서 마친다는 뜻이다. 발상을 전환(轉換)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한반도는 더 이상 교차점이 아니다. 한반도는 중심점이다. 새로운 문명을 꽃피워갈 시발점(始發點)이다.
한반도의 지도를 뒤집어 놓고 보라. 대륙(大陸)에 막힌 땅이 아니다. 대양(大洋)을 향해 열려 있는 땅이다. 대륙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대양을 향해 꿈을 펼쳐나가야 한다. 싸이의 말춤이 세계를 풍미하듯이 한류가 세계를 풍미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대통령의 말이 현실이 되도록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의 소원과 소망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