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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동규] 포천청성공원 독립선언서비의 건립, 독립기념관 건립의 국민제안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01일
 
ⓒ 포천신문  
(1)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포천출신 박동완 선생의 서명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韓日合邦)된 후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고 주권회복을 위한 의병(義兵)·의사(義士)들이 각지에서 일어났고, 1919년 3월 1일을 기해 2천만 조선민족의 거족적(擧族的)인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署名)한 조선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포천 향읍(鄕邑)의 호병골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가 활동한 독립운동가 근곡(槿谷) 박동완(朴東完,1885~1941)선생을 비롯하여, 3·1독립운동 당시를 전후해서 포천의 각 지역에서의 의병 출신 8인의 공훈독립운동가와 수천 명의 의병들이 후손들의 추앙을 받아야 함에도 포천에는 현충(顯忠)시설이 전무하여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2008년 5월, 포천시에서 간행한 박경자 편저(編著)의 <抱川독립운동사>에는 권동진·이종일 선생의 약전(略傳)과 존영(尊影)이 수록되어 있고, 박동완 선생은 미 수록되어 있었고 (2008 수정판 수록), 3·1정신 선양회에서 간행한 <獨立宣言書>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포천 출신으로 권동진·이종일·박동완 선생 등 3인의 존영·약전이 등재되어 있었다. 수록된 내용이 달라 사실(史實)을 정확히 규명해야 했기에 2015.11.4, 제안자는 서울 마포 합정동 광복회관 내 독립선언서 민족대표33유족회를 직접 방문해 각종 기록·자료를 확인했다. 그 결과 근곡 박동완 선생만이 포천 호병골 출신이고, 그 밖의 권동진 선생은 충북 괴산, 이종일 선생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확인되었다.

박동완 선생의 유족으로 손자인 박재상과 당일 전화통화로 선생의 출신지가 양평이 아닌 포천시 호병골임을 전해주었더니 그 다음날 각종 자료를 가지고 와서 내용을 확인한 바 선생은 포천 출신임이 재확인이 되었다. 포천시도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 재차 확인하여 이런 오류(誤謬)를 사실대로 <抱川의 독립운동사>를 수정 보완해야 하며, 공원 상위층의 충혼탑 호국영령 3·1운동가 중에 이종일 선생이 포함되어 오기된 것을 역사바로세우기로 하루 속히 바로 수정해야 함을 시청에 촉구했다.

포천은 전통적으로 명현(名賢)과 충신(忠臣)을 다수 배출한 향읍(鄕邑)이라고 우리 시민이 자긍(自矜)하지만 민족대표로 서명한 박동완 선생과 수많은 3·1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거명된 적도 별로 없거니와 인지(認知)하고 있는 시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 지 자문하고 싶고 안타까운 일이다.

근곡 박동완 선생은 우리 포천 호병골 출신으로 고종 때 기독교 신보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종교생활과 민족사상을 고취하였고, 3·1운동 당시 기독교 대표자로서 서명·날인하여 왜경에 체포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소년위원장과 신간회 상임간사로 활동하다가 1923년 하와이로 망명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독립운동에 적극 활동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장(受章)하였다.

(2) 포천청성공원에도 독립선언서 비를 세워서 독립정신을 선양
민족대표로 서명한 33인의 출신 지역마다 각종 현충(顯忠)시설로 기념관과 기념탑, 복원한 생가(生家)나 생가지(生家祉), 동상(銅像)이나 흉상(胸像), 사당(祠堂) 등의 현충시설과 선언서비를 세워 놓고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독립정신을 선양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데, 포천에서만 독립운동에 대한 현충시설이 전무(全無)하다시피 하여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이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선언서비 건립을 2013.2.8, 포천시를 방문하여 제안하였고, 2013.2.24, 포천시·포천시의회를 각각 방문하여 제안자가 필사(筆寫)한 독립선언서 필사본(筆寫本)을 일일이 전하면서 청성공원에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 흉상(胸像)과 충혼탑뿐이고 현충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독립선언서 비를 우선 세울 것을 국민제안을 했다.

제안자는 2013년도 <抱川文化> 제20호의 ‘3·1독립운동 당시 포천출신 박동완 선생이 민족대표로 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에서 포천 박동완 선생의 약력을 수록하여 포천시민의 자긍심(自矜心)을 심어주고 독립정신을 선양하는데 일익(一翼)했다. 2017년도 <抱川文化> 24호에도 포천청성공원 독립선언서비의 건립, 독립기념관 건립의 국민제안을 했다.

2014.7.18, 경기북부청사에서 남경필 도지사와 면담을 통해서 포천청성공원에 선언서비를 세울 것을 국민 제안하여 경기도 관계부서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진척(進陟)이 없어, 2015.2.28, 도지사에게 2차 국민 제안하였고 도청 관계부서는 경기북부지방보훈지청으로 이첩(移牒)하고, 보훈지청은 다시 포천시청으로 이관(移管)되어 시에서 계류(繫留) 중임을 확인하여 2015.5.8, 포천시청 시장대행 부시장과 포천시의회 의장을 각각 방문하여 국민제안서·독립선언서 필사본을 직접 전하면서 비 건립의 당위성(當爲性)을 강력히 주장하여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다.

<포천신문>는 포천청성공원에 독립선언서비를 세워 독립정신을 선양하자.’를 게재하였다. 2015.6.6, 포천청성공원에서의 현충일 추념식에 참가하여 참석한 각급기관장·보훈단체장·애국단체장·각급 의원들에게 호소문을 직접 전달하였고, 불참의원에게는 우편으로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포천시노인시지회, 포천시교육삼락회, 포천한시회, 포천명유회 등에 제안자가 필서(筆書)한 선언서의 필시본과 건립의 호소문을 직간접으로 전달하여 관심·동참을 대대적으로 호소했다.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독립정신 선양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광복7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포천시민의 날에 선언서비 건립을 촉구하는 2차 국민 제안하였고, 2015.6.26, 시장으로부터 제안이 채택되었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어서 2015.12.14, 경기북부보훈지청 청장을 방문하여 선언서 필사본과 모사본을 전하면서 청성공원에 선언서비의 건립계획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포천시 시민복지과에서는 2016.3.1, 3·1절 97주년경축일까지 독립선언서비를 제작·건립·제막하기로 하
고 예산을 확보하여 추진되었다. 제안자의 선언서 필사본을 시안(試案)으로 하려고 했으나 제안자인 본인은 사양하고 선언서의 활자본으로 확정하여 추진키로 하였다.

준비 부족으로 당초계획보다 공정(工程)이 다소 지연되었지만 담당 팀장은 소명감으로 각종 문헌자료의 조사연구, 시의 재정이 어려움에도 예산부서의 도움으로 예산을 무난히 확보, 현충시설임으로 보훈지청의 조언과 지원 요청, 시공할 전문업체의 선정, 관련부처의 협력 등 제안자의 당초 제안한 규모로 비다운 비를 건립하게 되었으니 담당자 노고에 대하여 경의를 표했다.

시에서는 독립선언서비는 오석판(烏石板)의 크기(2200mmx1700mm)로 확대한 시안(試案)이 채택되어 제안자가 2차 감수하고, ‘독립선언서비 제작경위서’의 안내를 석판(1000mmx700mm)을 기초하여 전문업체의 본격적인 공정으로 2016.4.28, 제62회 포천시가 주관한 경기도체육대회 개회일 당일에 제막하였으니 비록 공정이 늦었지만 오석(烏石)에 각석(刻石)한 선언서비를 제작·건립했으니 실로 감격해 마지않았다.


선언서비 옆의 ‘기미독립선언서비 건립경위’ 안내석판 말미에는 ‘이 선언서비 건립은 전 영북고등학교 박동규 교장이 국민 제안하고 비문을 감수하였으며, 포천시에서 2016년 3·1절 97주년을 맞아 비를 세우다.’로 표기해 놓고 있다.

포천시에서는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독립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2008년 5월에 간행한 <抱川의독립운동사>의 기술내용 가운데 많은 오류가 지적되고,선언서의 모사본마저 미 수록되어 있어 수록 보충하고 수정토록 했다. 2016.10.11,포천시장 대행을 방문하여 운동사의 수정, 충혼탑의 오기(이종일 선생 타 지역 출신 제적, 유충식·함병천·조계식·최학돌 선생 추가 등재)를 수정을 건의하여 경기북부보훈지청의 지원을 받아 2016.10.25,수정했다.

(3) 포천청성공원에 독립기념관 건립, 통일시대에 민족동질성회복 계기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출신지역마다 추모·현충시설을 해놓고 독립정신을 선양하고 애국선열을 추앙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 포천시민의 관심과 동참으로 한말(韓末) 의병활동의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을 비롯한 의병활동, 근곡 박동완 선생의 선언서 서명의 3·1독립운동, 광복회의 독립운동,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대한독립단의 독립운동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현충시설인 종합독립기념관을 세워야 한다.

시민의 독립정신을 고양(高揚)하고, 애국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타 지역에 비견(比肩)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 경제개발·주민복지·관광진흥·교육발전·교통발달 등이 시정(市政)에 우선해야 하지만 문화창달도 이에 병진(竝進)해야 한다.

제안자는 2014.10.23, 민족대표 33인 중 선언서를 낭독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의 소재 ‘萬海記念館’을 방문하였고, 2015.11.20, 충북 청주시 북이면 소재 33인 민족대표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孫秉熙先生遺墟地’를 답방하여 현충시설을 두루 관람하고 참고 자료를 제공 받았다.

후일 포천독립기념관 건립에 참고가 될 안내 자료를 시청 담당부서에 전달했고, 지난 4·13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에게도 독립기념관 건립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를 촉구했으니 2019년 3월 1일, 3·1운동100주년기념일까지는 포천독립기념관 건립이 발의되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포천지역은 남북통일시대 한반도의 중심지로 민족동질성회복(民族同質性恢復)의 거점(據點)이기에 포천독립기념관을 앞당겨 세워서 조선민족의 장전(章典)인 기미독립선언서에 담긴 3·1독립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8천만 민족의 통일헌법 제정의 모태(母胎)가 되리라 확신하고 기대한다.

포천독립기념관의 건립은 애국선열의 존영(尊影), 연보(年譜)나 약전(略傳), 유품(遺品)이나 소장품(所藏品), 서책(書冊)이나 유필(遺筆) 등을 소장·전시하여 전시민의 참관은 물론이고, 3·1독립정신이 기본이 되어 다가오는 남북통일 시대의 한반도의 거점(據點)지역에서의 전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양하며 애국선열을 추모하는 선도적 역할·기능을 할 수 있게 함이다.

정부의 3·1독립정신 선양의 정책의 일환으로 전시민의 큰 뜻을 한 데 모아 포천청성공원에 독립기념관 건립을 포천시장에게 국민 제안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보훈처장·문화재청장·경기북부지방보훈지청장·지역국회의원·광역의원·기초의원 등에 시민의 뜻을 모아 독립기념관 건립지원을 청원한다.

박동규 전 영북고 교장, 현 (사)경기북부노인지도자대학 학장,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지도위원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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