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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61

명절밥상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9월 29일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후손들아! 오늘은 명절을 맞이해서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려한단다.

왜군이 침략하여 조선팔도가 전란에 휩싸였던 임진년 왜란의 혼란한 와중에도 내고향 전라도 남해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한 사람이 있었단다. 사람들은 그를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장군이라 불렀단다. 휘하에 변변한 장교도 부대도 없는 허울뿐인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그는 일본군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남녘의 곳곳을 누비며 망해버린 조선의 수군을 재건해보려고 발버둥 쳤단다. 

그가 쓴 <난중일기>를 보면 무표정할 정도로 담담하지만 참혹한 가슴을 꾹꾹 눌러 쓴 듯한 구절들이 내 눈에 는 뜨이는구나. 이를테면 이런 거 말이다. “패잔병들에게 말 세 필, 그리고 활과 화살을 빼앗아왔다.” 해군 사령관이 도망 다니는 탈영병의 무기를 빼앗아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상상해봐.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8월5일 일기에는 전라도 곡성군 옥과 근처에서 피란민을 만난 기록이 나와. “피란 가는 백성들로 길이 꽉 찼다. 놀라운 일이다. 말에서 내려 타일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말에서 내려 타일렀다(下坐開諭)’일 거야. 높은 말위에 앉아 “모두 들으라!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니…”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은 말에서 내려 피란민들 틈에 들어가 설득하고 달랬다는 거야.

피란민도 이순신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어. 백전백승의 명장이었 지만 지금은 배도 군대도 없는 허깨비. 더욱이 엄할 때는 말도 못하게 엄했던 이순신이었어. 하지만 그런 장군이 말에서 내려 자신들을 위로하고 설득할 때 사람들은 더 감동받았지. 이 양반은 남한테만 엄한 게 아니라 자기 책임도 다하는 사람이구나. 믿을 수 있겠구나.하고 말이다. 1597년 8월9일의 <난중일기>에서 나는 이순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 “늙은이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먹이며 강권하는 것이었다.”

지금 머릿속에 맴도는 이순신의 한탄이 나에게는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구나.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士爲知己者死),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을 한다(女爲悅己者容)”라는 말이 있어. 너희가 들으면 “선비? 여인? 웃겨!” 하겠지만 까마득한 옛날 사람 얘기니 용서해주기로 하고, 나는 이 말에서 요즘 말하는 ‘리더십’의 윤곽을 잡는단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자신을 아낀다고 믿는 사람을 위해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어. 자신을 알아준다고 믿게 하는 과정,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길이 험하고 고독한 지도자의 길이겠지. 이순신에게 술 권하던 노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또 다른 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어.

“울면서 ‘장군이 이제 다시 오셨으니 우리는 살았습니다’ 하였단다.(8월6일 <난중일기>).”

모두 박박 긁어모은 배 13척으로 달려드는 일본군 대함대와 정면 격돌을 앞둔 9월15일 밤,이순신장군 은 꿈을 꾸지. 신선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라고 가르쳐줘. 이때 신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내 생각으로는 이순신에게 이렇게 말한 것 같아. “네가 선봉에 서라. 네가 죽고자 하면 부하들이 살 것이고 네가 살고자 하면 모두 죽는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면, 1597년 9월16일(음력) 벌어진 명량해전은 실로 이순신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거든. 진도와 해남 사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물살이 세고 좁은 울돌목의 물길에서 이순신은 역류를 버티기 위해 닻을 내려버리고 자신의 배만으로 왜군을 막아섯단다. <난중일기>에 적은바, 장수들도 “낙심하여 회피할 꾀만 내는” 상황에서 총사령관이 홀로 나선 거야. 물러서 있긴 했지만 장수들은 도망가지도 못했어. 상관의 사투를 지켜보면서 그들 역시 그들 안의 비겁과 싸우고 있었던 거야. 장수들뿐 아니라 병사들, 노 젓는 격군들 모두의 가슴에서 탁탁 불꽃이 튀고 “도망가면 어디로 가서 살 것 같으냐?” 하는 이순신의 절규가 기름을 끼얹었을 때 보잘것 없던 13척의 미니 함대는 그야말로 하늘나라 군대가 돼서 일본 함대에게 천둥의 불을 퍼 부으며 들이닥치게 돼. 명량해전의 기적이지.

엄할 때는 서릿발 같았지만 모두가 그 의 기준에 공감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도 그만한 엄격함을 보여주는 리더십. 고달픈 상황을 만든 사람에게조차 책임을 돌리지 않고 (원균을 싫어했던 이순신장군이지만 적어도 명량해전까지의 일기에서는 원균에 대한 원망은 일절 비치지 않아. 남이 하는 얘기를 들을 뿐이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제시할 줄 알며, 최악의 상황에서는 자신이 부서질 각오로 위기에 맞서는 리더십. 이순신은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진귀한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이야.

얼마 전 이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의 파격 발언이 나를 화나게 하더구나. “노조가 파이프 휘두르지 않았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임진왜란때의 이순신장군을 떠올렸단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장수들은 죄다 그런 식이었거든. “신은 최선을 다하였으나 아무개 때문에….” 뭐 이런 장계는 임진왜란 내내 썩어날 정도로 많아.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를 왔다 갔다 해(유럽 복지국가들은 50%를 우습게 넘지). 그 10%가 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말도 어이가 없지만, 그 정치인은 이익과 생존을 둘러싼 집단 간 충돌을 중재하고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 책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히려 책임을 노조에 갖다 안기는 행보를 당당하게 하고 계시는구나. 임진왜란 때 조선의 흑역사를 장식한 여러 졸장들의 리더십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흔치 않았던 이순신장군이였지만 간간이 인간적인 불만을 쏟아내곤 했지.

한 번은 사사건건 비위를 건드리던 경상우수사 배설을 두고 이렇게 써. “자기가 감히 감당하지 못할 지위에 올라 국가의 일을 그르치는데 조정에선 살피지를 못하니 이 일을 어찌하랴. 이 일을 어찌하랴.” 이순신장군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조정의 리더십을 한탄한 거야. 왜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장군은 진귀하기만 하고, 똬리를 틀고 한 백년 해먹는 고약한, 리더 아닌 지배자들은 어찌 그리도 흔한지. 이순신장군의 한탄은 옛 얘기가 아니야.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지위에 올라 국가의 일을 그르치는데….”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의 책임으로 치부해버리는 작금에도 나에게는 이순신장군의 한탄이 들린단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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