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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임성] 존엄한 죽음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2월 19일
 
이임성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총회 의장, 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설 연휴 끝날, 우리 사회의 존엄사 문제를 다룬 영화 '소풍'을 관람했다. 영화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의정부 사람 천상병 시인은 자신의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노래했다. 

천시인은 우리네 인생을 잠시 소풍나온 삶이라고 비유했기에, 소풍시인으로 알려졌다. 의정부시를 둘러싼 사패산 도봉산 수락산 천보산을 잇는 둘레길 이름이 '소풍길'로 명명된 연유다. 영화 소풍은 존엄사를 보여주지않는다. 결국 영화는 연로한 두 주인공 고은심, 진금순이 함께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고향마을 뒷산 절벽에 올라 동반 자살을 하는걸 암시하면서 끝난다.

며칠전인 2월 5일 93세의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70년을 해로한 부인과 함께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네덜란드 공영 방송은 "드리스 판아흐트 총리부부가 모두 매우 아팠으며 '서로가 없이는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총리 부부는 함께 손을 잡고 약물주입에 의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2002년 안락사를 세계최초로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치료의 가망이 없고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소망을 밝히는 등의 6가지 조건 아래에서 안락사가 허용된다. 현재 벨기에, 스위스, 호주등 10개국도 네델란드의 뒤를 잇고있다.

우리나라는 영화 소풍에서 말하듯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말기암 환자는 거의 다 출혈, 감염, 발열과 극심한 통증, 호흡곤란 등을 겪기에 반드시 대학병원 수준의 고도화된 의료처치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품위와 죽음의 질은 고려되지 않는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호스들이 몸 이곳 저곳에 꽂힌 상태에서 만신창이로 죽음을 맞는게 우리 현실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는 죽음에로-앞질러-달려가봄(Das Vorlaufen in den Tod)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철학자는 현존재인 우리들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끝인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늘 난해한 철학책을 제쳐두더라도, 각자의 죽음에 대하여 한번 쯤 고찰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존엄사는 스스로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는 과정을 겪은 결과이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숙고한 후 그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 ‘존엄사’이기때문이다.

우리 판례에서 존엄사에 관한 가장 주목할만한 사건은 2009년 소위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이다. 대법원은 우선 1)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을 것, 2)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있을 것이고, 만약 사전의사가 없을 경우 환자의 평소 가치관 등에 비춰 추정할 것, 3) 사망단계 진입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할 것을 요건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김할머니는 법원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가 중단되었으나, 튜브로 영양을 제공받는 것은 멈추지 않았고, 이후 6개월 가량을 더 생존하시다 돌아가셨다.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 이후 2018년 2월 4일부터 ‘호스피스ㆍ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도입되었다. 통계상으로 현재 국민 200만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하였고, 연간 30만건 이상의 연명치료중단이 실시된다. 여론조사로도 존엄사 찬성이 70~80%로 나타난다. 이 정도의 수치라면 어느 정도 존엄사 허용의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법조인이 중심이 된 시민단체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의 주도로 존엄사(조력사망)의 법제화를 위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헌법재판소는 사상 최초로 본안심리에 회부하였다. 고무적인 일이다. 조력사망이라 함은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고나서 환자 자신이 의사가 준비한 약물을 주입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말기의 난치병 환자이며,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는 경우에, 법이 정하는 절차를 거친후 조력사망을 허용하자는게 위 단체의 주장 요지다.

결국 존엄사 쟁점은 우리 형법상, 촉탁ㆍ승낙에 의한 살인죄(제252조 제1항)와 자살방조죄(제252조 제2항)가 적용되는지 여부이다. 이들 범죄는 1년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법정형으로 하는 중범죄이다. 현행 법상 조력사망의 조력자는 이러한 범죄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된다. 특히 의사의 조력을 받는 존엄사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헌법소원제기와 병행하여, 국회가 별도 입법을 통하여 존엄사 조력자들, 특히 의사들과 환자 가족들의 형사책임을 면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제1문). 불치병, 난치의 말기 암으로 참을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겪는 누군가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통한 절망적인 삶을 강제하는 것은 그들의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경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깊이 반추하고, 그 연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이를 존중해야한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존엄한 죽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는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임성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총회 의장, 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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