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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칼럼] 박물관을 다녀와서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2월 08일
 
박창진/ 사회복지학 박사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과 특별전시실에서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까지 보고 왔다.

강과 인접해서인지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더해서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했지만, 그런 날임에도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걸 보니,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맛볼 수 없었던 문화 향유에 대한 갈증에 매우 목말라 있었음을 알 것 같았다.

더구나 11시 조금 전에 도착한 우리는 오후 2시나 되어서야 관람할 수 있었으니 사전 예매를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루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273년 루돌프 1세가 독일의 왕으로 선출된 것을 기점으로 1282년 오스트리아 공국을 점령함으로 세력을 넓히다가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2세가 143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르면서 비로소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됐다. 

알브레히트 2세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1482년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정책으로 부르고뉴의 여 공작과 결혼하여 그 지방을 차지하고 부르고뉴 여 공작이 낙마 사고로 사망하자 브르타뉴 공녀 안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브르타뉴 지역까지 세력을 넓혀 합스부르크 가의 초석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후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왕가를 지배하다가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카를 1세가 폐위됨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는 막을 내렸다. 이때 생긴 유전병이 합스부르크 립(Habsburg lip)으로 그 당시 가문을 지키기 위한 정략적인 근친혼으로 성병과 함께 만연했는데, 심하게 돌출된 주걱턱으로 인해 입을 다물지도 못하여 입속으로 벌레가 들어가도 어쩔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외관의 흉한 모습과 입이 마르고 여러 가지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길게 수염을 길렀지만, 여성들은 그럴 수가 없어서 더욱 괴로워했다고 한다. 더욱이 심한 부정교합으로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었고 면역력 결핍으로 인해 수명이 매우 짧았으며 기형인 출산이 많았다. 전 유럽의 모든 왕가를 지배했지만, 유전병으로 인해 병약하고 단명하는 왕들이 계속 출현함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시물 들은 주로 그림 이였다. 그중 마르가거타 테레사의 경우 삼촌과 근친혼으로 호만 제국의 황제의 왕비가 되었는데 어렸을 때의 초상화는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으나 그의 성장 과정마다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유전병으로 인해 주걱턱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루이 16세의 왕비로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도 보였다.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그리고 빈의 미술사 박물관이다. 그중 2개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들의 예술품 사랑은 가히 광적이라 할 수 있겠다. 미술품뿐만 아니라 갑옷들과 몇 가지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그릇이나 화병, 술잔 등은 화려하고 정교하기는 했지만, 덩그마니 홀로 고고한 고려청자의 은은한 아름다움에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런데 세계 각국에 유명하다는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유물들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는 매우 짧고 그들은 사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의 문화요, 정신이요 예술품이다. 라고 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이 드물다. 그러니까 이름깨나 난 박물관들을 채워놓고 있는 예술품들은 모두 다른 민족이나 나라에서 약탈해온 것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침략과 약탈로 이어져 왔다. 식량에서부터 정신적인 부분까지,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으며 미래에도 이런 인간 같지 않은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역사적인 침략에 대하여 모두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세계 각국에 세워져 있는 박물관에서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을 보면 그 이면에서 벌어졌을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일들을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이 자랑하는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국박물관에는 그들이 아프리카를 침략해서 노략해 온 유물들로 가득 차 있다. 세계 각국이 다른 민족의 유물을 약탈해 온 것들은 저 고대 중동지역의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미이라 부터 수천 년 된 건물을 통째로 뜯어가기도 하고 잉카제국처럼 아예 나라와 민족 전체가 소멸되어진 경우도 있다. 

인간의 악마적 성품은 금은과 같은 물질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사냥하여 노예로 팔고 사며 동물보다 못한 학대에 이르게 된다. 이 아프리카 노예사냥을 생각하면서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꾀이거나 강제로 납치하여 꽃다운 소녀들을 정신대로 보낸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디 그뿐인가 일본은 총도 제대로 들어 올릴 수도 없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끌고 가 동남아 등의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갔다. 

지금도 자신들이 한국의 철도, 도로, 항만 등 국가 기관산업에 지대한 발전을 이루게 했다는 파렴치한 주장은 구역질이 나게 하고 해괴한 근거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대가리에 육수만 들어 있는 매국적인 학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보고 공부하고 연구했는지 기도 안 찰 일이다. 이런 정신머리 없는 인간들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정말 심히 염려스럽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쏟아져 들어온 유럽인들에게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대량 학살당하고 지금은 한정된 지역 내에서 관광객들에게 꼭두각시 놀이를 해야만 먹고 살며 겨우겨우 종족 보존을 하고 있으며 언제 멸종될지 알 수 없는 처지이다. 이것은 정착형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약탈할 때 노예로 사냥당하거나 죽은 사람들의 수는 알 수 없을 만큼 많지만, 한 예로 벨기에 레오폴 2세의 조사에 의하면 콩고자유국에서만 30년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들 유럽국가의 만행을 밝힌 이 보고서는 그들이 저지른 일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서 내세운 이유는 협정에 의한 개발, 발전, 교육을 통한 문명사회로의 귀환을 통해 야만에서 문화시민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내세웠는데 그런 일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저 무지한 것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한다는 기독교도 한몫을 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이 부분에 매우 분노하며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지면을 빌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싶다.

백인우월주의는 자신들의 발전된 문명을 내세워 백인이 다른 유색인종들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다는 자만에 빠져 수도 없는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오히려 피해자들을 기이하고 악의적인 동정심으로 타자성을 만들어 내는 파렴치함을 서슴지 않았다. 본인들이 자부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월한 종족이라면 잘 잘못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1897년 독일의 의사이자 탐험가였던 리하르트 칸트(Richard Kandt)는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의 펠릭스 폰 루산에게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 물건을 손에 넣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추측건대 귀하의 박물관에 있는 물건 중 절반 이상은 훔친 물건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습게도 서구의 박물관들은 파괴와 약탈을 해서 가져온 상대의 문화재에 대해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보호”였다는 해묵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그리고 폭력으로 빼앗아 온 당사자들의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는 현재의 박물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 영국의 박물관들은 자신의 컬렉션 속에 있는 약탈물들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설명하지도 않으며 설명하지 못하도록 교육한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깨인 지식인들의 입수 경위를 설명하라는 요구에도 묵비권으로 대응하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8ㆍ15 광복절이나 3ㆍ1운동 기념일 등이면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와 일본을 규탄하는 방송이 이어진다. 보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은 그때마다 분노가 치솟고 반일감정이 되새겨지곤 한다.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수많은 약탈 박물관들은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폭력과 약탈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피해 당사국들은 시장에 약탈품이 나타날 때마다 사들이며 약탈당한 것들을 돌려주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박물관의 진 랭킨 부관장은 “영국박물관에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물건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교에 비치 되어 있는 타국의 유물을 돌려주라고 데모를 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이 최고의 지성이요 특별한 종족이라 자부한다면 하루속히 폭력적으로 약탈한 것에 대해 깊이 사과하고 있던 곳으로 되돌려 주어야 하며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프랑스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는 1866년 병인양요(고종 3년)를 일으킨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2011년 145년 만에 우리나라에 돌아왔지만 완전한 반환이 아니라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유로 5년 단위의 대여형식으로 와 있는 것이다. 이 책들은 조선의 500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자산이며 이제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 시대의 중요 국가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해 놓았는데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이끄는 품격의 통치가 수록된 내용이다.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강제로 납치되어 간 후 잠깐 들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웠다.

문화유산을 강탈당한 후 세월이 오래 지나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일어난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나라의 많은 도공들은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도공들이 만든 도예품들을 자기들의 상급자에게 진상품이 되었고 모방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일본은 차츰 납치된 도공들에게 일본식 색채를 더하게 하므로 일본 것으로 자리하여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결국, 약탈해간 정신적 문화유산이 남의 것으로 둔갑 되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 것을 찾아와야 한다. 그것은 국가적인 노력만으로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릴 것이고, 우리 국민들이 우리 유산 되찾기에 힘을 모아서 끊임없이 각국 홈페이지에 돌려 줄것을 요구하고 SNS 등을 통하여 알고 있는 외국의 지인들에게 그 나라에 있는 우리 유물이 무엇인지 알리고 되돌려 줄 수 있는 여론을 형성해 줄 것을 호소하는 방법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수백, 수천만 점은 될 듯한 우리의 문화유산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박창진/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이웃과 함께 대표이사, 꿈이 있는 마을 원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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