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진의 연재수필 “운명의 장난”

제종이네는 고물 캘 때 쓰는 탐지기가 있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땅위에 둥근 탐지 판을 대고 다니면 ‘웽’하는 소리가 나는 곳에는 고물이 묻혀 있다는 신호랍니다. 고물을 캐는 데는 군용 야전삽이 가장 좋습니다. 휴대하기 편할 뿐만 아니라 뒤쪽에는 곡괭이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고 좀처럼 쇠가 강해서 잘 망가지지 않고 나무뿌리나 칡뿌리를 캘 때도 쉽게 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종이 할아버지는 유난히도 고물 모으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못대가리 한 개, 삐삐선 한 토막도 예사롭게 지나치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제종이네 뒤뜰에는 항상 고물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할아버지께 영향을 받았는지 제종이는 유난히 고물을 캐거나 줍기를 좋아합니다. 공책 값은 2원이었고 지우개는 1원이었는데, M1 탄피 한 개를 팔면 2원을 주니 탄피 한 개를 줍는 것은 횡재한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경필이와 돈채, 제종이는 오후반이라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어깨에 책 보따리를 얼러 메고 학교 길에 나섰습니다. 1학년 입학할 때는 모두 어깨에 메는 가방을 사주지만 그 가방이 어디 오래 가나요? 가방의 질이 좋지 않아 2년을 메고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가방보다는 책보자기가 더 좋아합니다. 가방은 엎드리기만 하면 뚜껑이 열어져 책이 모두 쏟아지지만 책보자기는 어깨에 묶고 마구 뛰어 다닐 수 있어 편합니다.

2학년이 되면 반 아이들 대부분이 광목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어 메고 다닙니다. 여자 아이들은 책을 보자기에 말아 허리에 일본 기모노처럼 차고 다니지요. 광목 보자기는 좀 좋은 편이고, 나는 쌀자루를 펴서 책보자기로 가지고 다닙니다.

봄인지라 논에는 개굴이가 부질없이 울어대고, 논두렁을 따라 걸어가면 삘기를 뽑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길은 너무 멀고 심심합니다. 굴렁쇠도 굴리고, 깡통도 차고, 남이 씹고 버린 껌종이도 주워 모으며, 학교에 가는 것인지 놀러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종이는 들에 나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책보자기를 메고 학교 길에 올랐습니다. 동네를 벗어나 심재를 막 지나는 5사단 근처에서 제종이는 수류탄 두 개를 주웠습니다. 우리 동네는 조선 숙종 이후로 김 씨가 모여 사는 씨족 부락입니다.

경필이는 성이 다르지만 제종이와 돈채는 당숙과 조카지간으로 제종이가 아재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항렬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서로 욕지거리 하며 잘도 지냅니다. 그렇지만 먹을 것이 있을 땐 싸우지 않는답니다. 꼭 나누어 먹으며 집안의 우의를 과시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제종이는 돈채에게 수류탄 한 개를 주어 둘은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예, 임마야. 난 한 개 안주냐? 니덜끼리만 갖냐?” 경필이가 달라고 욕을 하며 떼를 씁니다. “야, 우리 도망가자!” 제종이와 돈채는 한 개를 달라고 떼를 쓰는 경필이를 피해 군부대 옆 논두렁으로 도망쳤습니다.

“우리 이거 까 볼까?” 제종이가 말했습니다.

“야, 하지마. 터져?” 돈채가 만류 하였습니다. “괜찮아 임마! 나는 할아버지가 하시는 것 많이 보았어.” 제종이는 능숙한 듯 말하였습니다.

야, 너 저리 가봐!” 제종이는 돈채와 거리를 띠우며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높이 들고 왼손으로 안전핀을 뽑았습니다. “어어…” 돈채는 순간 엎드렸습니다. “꽝!” 수류탄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웨엥…” 군부대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습니다.

갑자기 터진 굉음에 근처 5사단 군인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군인들이 삽시간에 뛰어나와 제종이를 구조하였습니다. 제종이는 군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제종이는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오른손을 잃고 말았습니다. 6.25전쟁의 후유증이 배고프고 천진난만한 코흘리개 내 친구 제종이의 오른손을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전쟁은 정말 없어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힘없는 나라 백성만 희생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