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산과 들에 몽글몽글 꽃과 나무의 새싹들이 어우러져 물감을 풀어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한 봄날, 우리 외할머님의 팔순잔치가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열리고 있었다. 가족들만의 축하연, 아들 딸 손자 증손자 며느리 사위 등. 가족잔치가 한창이다. 오랜만에 낮익은 사촌 외사촌들의 만남이 이어지고 잔치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6.․25를 겪고 한 많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 외할머니, 보릿고개를 만나 입하나 줄이려고 큰딸인 우리엄마를 열아홉 어린 나이에 시집을 보내셨다고 한다. "왜"라고 묻는 나에게 큰 외삼촌은 "느그 할머니는 열여섯에 시집을 오셨다 " 하니 참으로 기막힌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칠남매를 기르며 그 험난한 세상을 사시면서 그 자식들에게 사랑이란 이름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할머니, 속은 타다못해 숯검정이 되었고 그나마 할머니의 둘째딸을 십여년 전 먼저 보내고 막내아들도 지난 추운 겨울 또 보내는 가슴저린 아픔을 겪으셨으니 타다 남은 숯검정마저 이미 재가되어 버렸으련만 가슴아픈 메아리들은 흐르는 세월 속에 묻혀 버렸나보다.
증손자들의 생신축하송이 흐르며 침묵하던 자손들의 눈가에 눈물자국이 얼룩지고 있었다. 그래도 외할머님의 생신을 핑개로 우리 오십여명이나 되는 자손들은 만남의 기쁨을 만끽하며 그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사랑"의 테두리 "핏줄"이라는 "끈끈한 정"이 메말라 가는 요즘세상.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거 노인과 버려지는 아이들이 자고 나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세상. 하지만 나의 할머니처럼 행복한 노인 분들과 그 아들 손자 며느리 같은분들도 많이 계시리라는 마음의 위안을 삼아본다.
나뭇가지의 버팀목으로 세찬 비바람의 세월을 이겨낸 저 앞마당의 힘없는 고목나무를 받치고 있는 지렛대처럼 자식들을 위해 고되고 힘든 세월을 살아온 늙고 병들고 힘없는 부모를 자식들이 정성으로 공경해드린다면 이 각박한 현실이 좀더 값지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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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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