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만에 어렵게 살만한 집을 마련한 언니네집 집들이에 우리 형제들의 만남을 축복이나 하듯이 서울을 향하는 차창밖의 도로변에는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나리가 화들짝 미소짓고 있다.
땅거미는 저녁 무렵 시끌벅적 우리 육남매는 음식이 차려진 상을 사이에 두고 쭈욱 둘러앉았고 시끌시끌 소란스럽게 정담이 오고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언니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힘들게 살았던 시절. "예! 난 라면이 먹고 싶은데 라면 살 돈이 없어 저금통을 털어보니 십원짜리 동전이 몇 개 나오더라."그것으로 라면을 사 먹은 적도 있다며..... 참으로 살기가 힘들었지만 그때는 그 누구한테도 이야기할만한 사람조차도 없었다면서 하나뿐인 막내둥이 며느리인 올케에게 "넌 지금은 힘들겠지만 너의 주위에는 언니들이 있으니 덜 힘들거야!" "그러니 열심히 살아다오."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 나도 질세라 "난 지금까지 집에서 살림만 한 적이 없어. 백일된 아들을 유모차에 재워가며 가게일을 도왔고, 또 뒤늦게 11년만에 딸을 낳았지만 그 아이마저 백일 되던 날부터 데리고 나와 일을 해야만 했어."라고 나도 무척이나 고생스러웠다며 이야기를 꺼내자 동생들도 앞을 다투어 서로의 힘들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고되고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는 이야기들은 끝이 없었고 가만히 듣고 계시던 노장 엄마의 오래된 캐캐묵은 항아리속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하셨다.
육칠십년대 때 정말정말 어렵던시절 울며겨자 먹기로 우리 육남매를 길러내던 그 시절 이야기들은 이제 조금씩 철들어가는 딸들의 가슴속을 눈물로 후벼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아프고 힘들던 과거의 삶은 찰랑거리는 술잔속에 모두 가라 앉히고 우리 식구들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안고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로 아주 커다란 웃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심속의 밤은 깊어만 갔고 끈끈한 피로 맺어진 우리 육남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창밖의 저 불빛 현란한 밤하늘에 잔잔히 물결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