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탐조(探鳥)이야기 (7)]붉은머리오목눈이(parrotbill)

수다스러울 정도로 재잘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에 얼른 사무실 뒷쪽 창문을 열어보니 백여마리가 넘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잡초덩굴 사이로 지나가고 있다.

항상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 새들의 모습은 마치 나 어릴 적 친구들과 가을 소풍 떠나며 흥에 겨워 콧노래 부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맑은 노랫소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어느새 썰물처럼 저만치 멀어져 가버리고 말더군요.

이 녀석들은 먹이가 많이 있는 곳에서도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여기서 한 입, 저기서 한 입 흥겨운 노랫가락을 읊조리며 바람 따라 흘러 다니며 먹이를 먹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포식자의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겠지요. 이렇게 부지런히 자리를 옮겨가며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이들을 카메라에 담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군요.

여기다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 어느새 사라져 저 멀리 달아나곤 하는 얄미운, 그러나 귀여운 새 입니다.

ꡐ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ꡑ라는 옛말에 등장하는 뱁새가 바로 이 붉은머리오목눈이이기도 합니다.

옛부터 불려오던 뱁새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어느 순간에 붉은머리오목눈이로 개명되어 불리게 되었는데,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체구도 자그마한 뱁새가 쓸데없이 큰 황새를 쫓아다닐 이유도 없는데, 우리 조상님들의 속담에 비유가 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님들께서 뱁새가 미워서 그러셨겠습니까.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 작은 종류에 속하는 뱁새와 가장 큰 종류의 새에 속하는 황새를 견주어 만들어 낸 격언이겠지요.

그리고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여름철 뻐꾸기가 가장 좋아하는 새 중 하나입니다.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대신 품어줄 다른 대리모로 붉은머리오목눈이를 가장 선호하는 것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이렇게 탁란(托卵 )하는 뻐꾸기의 희생물이 됩니다.

그러나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모두 다 대리모로 희생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뻐꾸기가 탁란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가 자신의 둥지를 노리고 있는 줄 아는지, 흰색과 푸른색 의 두 가지 알을 번갈아 낳아 뻐꾸기의 알을 구별해 낸다고 합니다.

또 뻐꾸기는 탁란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알을 낳고는 뱁새의 알을 몰래 물어 가버려 둥지 안의 알 숫자를 맞춘다고 합니다.

모정이 강한 뱁새가 순박하게 대리모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탁란을 방지하기 위해 뻐꾸기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처 뻐꾸기가 탁란에 성공하면 뱁새보다 먼저 부화여 아직 부화하지 않은 뱁새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혼자서 엄마 뱁새의 먹이를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자신의 새끼들을 모두 잃고, 자신보다 몇 배 더 큰 뻐꾸기 새끼를 먹여 키우는 장면을 보면 정말 마음이 짠해 옵니다.

그러나 만약에 뱁새들이 뻐꾸기의 알을 모두 구별해 내서 탁란을 하지 않게 되면 아마도 이 땅에서 다시는 뻐꾸기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참으로 자연의 이치와 섭리는 오묘하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주변에는 자신의 분수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뱁새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소비는 필요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인데 요즘은 필요가 아닌 과시를 위한 것으로 변질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심으로 좀 더 큰 자동차를 구입하고, 좀 더 큰 집, 좀 더 이름 있는 명품으로 치장하려고 과소비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져 고통받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곤 합니다. 뱁새는 결코 황새를 쫓아가지 않습니다.!

<2006.11.20 포천시 소흘읍에서 촬영>

포천생태연구회   이상일  017 - 705 - 0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