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에세이 ]우리는 여성판사시대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여권신장의 바로미터를 주요 요직에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숫자로 보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몇몇 잘 나가는 여성이 모든 여성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고 여성의 정확한 실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구색 맞추기 식의 여성에 대한 배려로 요직에 앉아있는 여성이 많았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모 일간 신문에 여성들의 판사진출이 파격적으로 늘어난 현실과 과거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홀홀 단신으로 판사 임용대상이 되었다가 거부되었던 이태영 박사의 경우를 비교하면서 상전벽해의 감회의 글이 실렸다. 여성판사의 비율이 19.1퍼센트에 이르고, 작년 사법시험 합격자 625명중에 37.62퍼센트의 여성이 차지했다는 놀라운 여성 진출의 증가에 통계를 접하면서 이제는 남성위주의 권위적 판사의 결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여성 판사의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자세가 판결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대로 군사정권에 의해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충분한 변론과 사회적 공론화를 가지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반체제 인사의 경우를 보면서, 흘러간 세월의 억울함에 몸서리치며 울부짖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체험하였다. 권위적인 정치 판사들의 오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정의나 공평무사함을 기대하기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 왜곡되는 사법부를 외면하게 하였으며, 급기야는 그들에게 석궁을 겨누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여성판사의 역할에 대한 좋은 모델을 제시한다. 유태인 샤일록이 기독교인들의 유태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극도의 원한을 가진 나머지 빚을 제 날짜에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서의 명시된 그대로 상인 안토니오의 살 한 점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안토니오의 친구인 남편 밧사니오를 돕기 위해 판사로 남장한 포샤를 통해서 여성판사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소개한다.

ꡒ이에는 이, 눈에는 눈ꡓ식의 살벌한 정의를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샤일록에 대해서 포샤는 여성적 가치관을 수용할 것을 설득한다. 자비심을 베풀라는 포샤의 설득에 대해 샤일록이 강요하지 말라고 반발하자 그녀는 이렇게 설득한다. ꡒ자비심의 본질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하늘에서 땅 위에 내리는 자비로운 비와 같은 것으로 이중의 축복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같이 축복하며, 가장 위력 있는 자에게도 최상으로 위대한 것이다. 옥좌에 앉은 군주에게는 그 왕관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다. 그가 손에 쥔 왕홀은 현세의 권력을 나타내나, 자비심은 황홀의 위력을 능가하는 것이다.ꡓ 사람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판사가 죄를 저지른 자의 행위를 단지 법률상의 자구대로 적용하려한다든지, 권력자의 의중만을 신경을 쓰는 나머지 법을 어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다면 세상은 온통 증오와 보복으로 가득 찬 생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법이란 사람을 공생과 공익을 위해서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사람이 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성 판사로서 포샤는 법이 정한 정의를 자구대로 지켜야한다고 강변하는 샤일록에게 자구 뒤에 숨어있는 법의 인본주의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은 계약서에 쓰여진 대로 ꡒ내가 요구하는 살 일 파운드는 고가의 대가를 치른 것이니까 그건 내 것이요. 그걸 갖겠다는 것입니다. 그걸 거절하신다면, 아니라 법률은 휴지나 다름없고, 베니스의 법령은 허수아비와 한가지지요.ꡓ라고 강변한다.

샤일록은 정의라는 미명아래 주장하는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 사법부의 오점을 남긴 판결들처럼 체제수호를 위해 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래시아노는 샤일록에게 ꡒ피타고라스가 주장했듯이 짐승의 혼이 사람 몸 속에 들어온다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네놈의 그 개 같은 근성은 원래 늑대 속에 들어 있던 게, 사람을 잡아먹은 죄로 교수형을 당할 때에 그놈의 흉악한 영혼이 교수대에서 도망쳐 나온 길로, 네 신체 속에 들어간 거지. 네가 더러운 네 어미 뱃속에 있을 때 말이다. 그래서 네 욕심이 피에 굶주린 늑대같이 잔인한 거다.ꡓ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판사가 아무리 법률에 근거하여 정당한 판결을 내렸다하더라도 그 정의가 인간적 가치를 어겼을 때는 문제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포샤는 샤일록에게 이 사회가 정의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ꡒ자비는 정의를 부드럽게 할 때 지상의 권력은 신의 권력에 가까워지는 것이오. 당신의 주장이 비록 정의에 의거한 것이기는 하나, 누구나 정의만 쫓는다면 인간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오. 우리는 하느님께 자비를 기원하지만, 이 기원은 곧 우리들 상호간에 자비를 베풀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오.ꡓ 라고 그의 자비를 강조한다. 포샤는 자신의 인간적인 제안을 거부하는 샤일록에게 냉엄한 심판을 내려 사회에서 영원히 소외시켜버리는 지혜를 발휘하지만, 권위적인 심판보다는 인간적인 설득을 앞세우는 자세가 돋보이는 것이다. 여성판사시대에 돌입하는 한국 사법부의 전망이 매우 밝으리라는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