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이상적(理想的)이란 말을 한다. 이상적이란 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現實)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현실의 대칭어로서 "이상"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으나 머리 속에서는 상상(想像)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상의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을 추구할 때 "이상의 날개"를 펼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꿈같은 이야기"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란 뜻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부인만 하겠는가? 아니라고 무시해버려야만 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꿈은 희망과 통하고 이상과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꿈을 꾸라고 하는 것이고 "높은 이상과 희망"을 품으라고 하는 것이다. 어릴 때 "큰 꿈"을 꾸어야 한다. 청년시절에 "높은 이상과 희망"을 품어야 한다. 꿈이 없는 인생, 희망이 없는 인생은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사회, 이상이 없는 사회는 별 볼일 없는 사회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꿈"을 꾸되 허황된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희망(希望)을 품되 허황된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성공 가능한 꿈과 희망을 품어야 한다. "이상적인 세계"와 "성공 가능한 세계"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모를 "노력"이 뒤따라야 하고 집념(執念)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히 "생각"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행"으로 그곳에 가 있어야 한다. "행"으로 그것을 이룩해내야 한다. "행"으로 그것을 성취할 때 이상향(理想鄕)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샹그릴라"라는 말이 있다. 히말라야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이란 뜻이다. 그곳은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장수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정말 그러한 곳이 있을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곳이다. "생각" 속에서나 가능한 곳이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곳이다. 불가능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샹그릴라"를 꿈꾸는 것은 희망을 위해서이다. 이상을 위해서이다. "인간은 희망과 이상이라는 꿈을 먹고 자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경에 "반야바라밀다;라는 말이 있다. 반야란 위대한 지혜(智慧)라는 뜻이고 바라밀이란 그 지혜를 이룩할 수 있는 "저편"이란 뜻이다. 저편이란 "이상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승의 짐을 벗어버리고 저편 언덕에 이르러 "위대한 지혜"를 이루자는 것이다. "이상향"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향은 "저편"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승"에서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승에서 위대한 지혜를 발휘하면 이미 이승이 "바라밀"이 되는 것이다. 저편의 바라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승을 바라밀로 바꾸려는 노력을 경주(傾注)해야 한다. 이승을 바라밀로 바꿀 때 인생은 더욱 값지고 행복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져야 한다.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이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 나는 안 된다고 좌절(挫折)해서는 안 된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抛棄)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可能性)을 지닌 존재이다. 영어로는 이를 포텐셜(potential)이라고도 하고 퍼씨빌리티(possibility)라고 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포텐셜과 퍼씨빌리티를 지니고 있다. 이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인식(認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내면에 숨어있는 이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 내면에서 치솟는 이 "기운"을 이끌어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다. 스스로 도와야 한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 가능성과 힘을 찾아 "이상향"을 건설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