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대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의 손에서 시집은 멀어진다. 먹고사는 문제라는 호구지책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리나 선함, 아름다움 등의 형이상학적 가치는 그저 삶의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빵이 삶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성현들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랑이 없다면 단 하루도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삶의 활기를 찾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이다. 우리가 기르는 애완견이나 식물조차도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시들거리는 것을 보면 아마 사랑은 만물의 섭리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글이 바로 시다. 시인은 사람의 사랑의 아름다움, 진실성, 일관성, 그리고 절박성 등을 느낄 때,
"완벽하고 영원한 사랑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어느 날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고 아무 기약도 없이 헤어질 수 있는 자유로움이 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인간의 사랑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감동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찰나적 사랑을 하더라도,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 사랑을 아름다운 시어로서 노래한다. 사실 사람의 사랑은 정적인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기복이 심하기에 사랑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시가 사랑의 주체인 사람보다 생명력이 길어서 후세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사랑까지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시와 사랑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소네트에서 "어쩌면 내가 그대의 묘비를 쓰게끔 오래 살지도 모르고, / 어쩌면 내가 흙속에 썩고 있을 때 그대 살아 있을 것이라. / 어쨌든 그대의 기억은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 / 내가 속한 모든 것이 다 잊혀진다 해도." (소네트 81) 셰익스피어가 노래하는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가 말하는 사랑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대적 사랑이 매우 즉흥적이고 찰나적인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사랑이 감상적이고 구시대적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진실한 사랑이라면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보다 고귀한 감정이나 추억으로 남아서 연인들 간의 마지막 순간의 결정체처럼 남아있을 수 있으리라.
시는 사랑에 대한 결정체에 대한 기록으로 비문처럼 오래 남는다. 비문에 새겨진 시는 비록 죽은 자에 대한 글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흙으로 이루어진 죽음의 상징인 무덤과는 다르다. 무덤 속에 묻힌 연인의 몸은 썪어 변형되고 말지만, 비문에 새겨진 사랑의 시는 읽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고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연인의 죽음이라는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 사랑의 영원성으로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어느 여인을 죽도록 사랑하고, 그녀의 죽음을 넘어서 자신의 사랑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참사랑의 표본이다. 몸이 필수적인 에로스적인 사랑이 인간에게 가장 친밀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것의 유한성은 항상 인간을 서글프게 하지 않는가. 이러한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시가 아닐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시를 쓰는 이유를 "그대의 이름은 시에 의해서 영생하리라. / 나는 한번 죽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지마는. / 그리고 땅은 평범한 무덤만을 주지만, / 그대는 사람들의 눈 속에 누우리라. / 그대의 비문은 나의 정다운 시라. / 그것은 아직 창조되지 않은 눈들이 읽고, / 이 세상에 태어날 생명들이 그대의 이야기를 하리라, /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사람들이 죽었을 때에."(소네트 81)라고 언급한다. 결국 그가 노래하고 있는 소네트가 사랑의 영원성을 가져오기를 희망하고 있으리라.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사랑에 대한 그런 믿음이나 고귀성을 가지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사랑은 현대의 포스트모던적인 파편성에 기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완벽하고 영원한 사랑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어느 날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고 아무 기약도 없이 헤어질 수 있는 자유로움이 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인간의 사랑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감동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찰나적 사랑을 하더라도,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시인은 그런 사람의 마음속을 뚫어보고 이상적인 사랑을 제시한다. 시를 통해서 인간적 사랑의 비극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셰익스피어는 이 소네트의 마지막 두 행에서 "그대는 언제나 살리라--내 붓은 그런 힘이 있나니-- / 숨결이 약동하는 곳, 사람의 입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의 시가 사람들의 입 속에 끊임없이 회자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도와주는 큐피드의 화살과 같은, 『한 여름 밤의 꿈』의 요정들이 발라주는 "사랑의 묘약"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원하고 있다.
돼지해를 맞아서 사랑을 기약하는 연인들이 많아졌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단한 복을 받는다고 믿고 서둘러 사랑의 결실을 맺고자 하는 모습도 두드러진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그들이 맺은 사랑의 진실성과 일관성이 담보되어야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사랑의 소네트가 새해를 맞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