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철 (포천노인전문병원 한방원장)
필자가 일하고 있는 병원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다. 아직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즘에는 아침이면, 그리고 봄에서 가을에는 저녁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는 병원이다.
산책을 할 때마다 내 눈을 끄는, 아니 내가 눈길을 주는 길 옆의 폐가다. 그 집은 숲속에서 구해 온 나무를 엉성하게 쌓아올려 벽체를 만들고 그 벽체의 틈새기를 흙으로 메꾸고 지붕을 스레이트로 덮은 집이다. 지붕은 무너져 조각난 스레이트가 바닥에 떨어져있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폐가이다. 그 아마 그 집을 떠난 주인은 가난했고, 집 짓는 기술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집을 보면 그 주인을 알 수 있으니까. 그 주인 꽤 오래 전에 식구들과 집을 떠났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왜 집을 떠났을까. 아마 십중팔구 산 속에서 손바닥만한 땅을 일구어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위의 경우에 집(건축)은 사회조건(먹고 살기 힘든 환경)에 종속변수가 된다. 즉, 건축은 어느 한 사회의 조건에 따라서 지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산책로 옆의 폐가도 처음에는 그 집주인과 식구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구하고 주변의 흙을 파오고, 면 소재지의 건재상에서 스레이트 판을 몇 판 사와서 지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고생할 각오를 하고 집을 짓고, 밭에서 먹을 것을 얻어서 살아 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고 밭에서 나는 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그 집 주인은 어느 날 그 집을 버리고 도시로 갈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 집 주인에게 커 가는 아이들의 교육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이 시대에서 교육만이 가난하고 비천한 계급이 고귀한 계급으로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자연건축이든 인공재료건축이든 건축은 한 사회의 환경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경제적 환경이 가장 큰 변수가 된다.
<헨리 데이비드 쏘로(Henry David Thoreau)>라는 사람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 있는 <월든>이라는 이름의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만을 갖추고 살았다. 비바람을 피하고 겨울에는 나무 난로를 피울 수 있는 오두막집에서 일 년에 몇 포대의 밀과, 몇 벌의 옷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최근에 서구에서 <자발적 가난>과 <느림의 철학>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하루 중에 오전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오후에는 철저하게 자기의 시간을 갖으며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도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기존의 사회적 조건들의 영향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가치관에 의한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즉, 교육도 돈을 주고 사는 교육이 아닌, 마을의 구성원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을 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살 집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교육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이러한 사회,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온전히 그 사람들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그 새로운 사회에 걸맞은 건축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 건축은 자연재료를 가지고 집을 짓는 의미를 넘어서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의한 건축이다. 거기에는 기존의 사회적 가치들과 필연적인 충돌이 따르게 되고, 주체적 선택에 따르는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선택에는 항상 그 선택이 주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