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야기 5]보드빌리언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과 마녀사냥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은 1889년에 영국 런던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당시 영국에서는 본격적인 뮤지컬이 탄생하기 전에 미국의 보드빌이라는 공연형식과 비슷한 뮤직홀(Music Hall)이 인기를 끌었는데 호화로운 전문극장이 생기면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부모가 모두 뮤직홀에서 활동하던 다재다능한 보드빌리언(배우 겸 가수)이었지만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마저 정신병을 앓게 되자 10세 되던 해에 자립해야 했다. 어린 나이었지만 이미 훌륭한 탭 댄서로 활약하며 프로무대에 데뷔한 채플린은 14세에 정극에 출연하게 되었고 배우로도 재능을 인정받아 결국 뮤직홀에서 보드빌리언으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노래와 춤 그리고 어릿광대의 마임 연기와 풍자, 흉내 등은 이 때 습득된 것이었다. 영국에서 보드빌리언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후 채플린은 공연단을 따라 미국 투어 공연에 참가하게 되는데 그곳 영화사에서 그의 희극적인 재능이 높이 평가되어 헐리우드에 진출하게 되는 행운을 잡는다.

1914년에서 1915년까지 초창기 채플린의 영화 속 주인공은 약삭빠르고 평범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악동 같은 인물이었다. 인간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남자들을 괴롭히고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당시의 희극 분위기에 편승한 슬랩스틱 코미디로 해학은 없고 익살만 있었다. 그렇지만 보드빌 배우로써 잔뼈가 굵은 채플린에게 시사풍자는 일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보드빌 배우들이 연기하곤 했던 벌레스크는 일종의 저속한 짧은 촌극으로 전락되었지만 그 본연의 생명은 시사풍자였기 때문이다. 채플린의 초기 무성영화 중에서 <이민자(The Immigrant, 1917)>는 바로 이런 풍자정신의 발로였다.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민 오는 주인공. 이민자들을 거칠게 다루는 이민국 직원을 보고 그의 엉덩이를 몰래 발로 걷어차는 주인공의 행위는 당시 다국적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희화화한 것이었다. 비록 이 장면이 단순한 익살적인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풍자를 담은 해학적인 표현이었는지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것이 후에 있을 ꡐ비 미국행위 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ee)ꡑ와 ꡐ매카시즘(McCarthyism)ꡑ에 표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더욱이 1936년에 개봉한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는 결과적으로 채플린이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영화 속에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묘사는 미국 하층노동자들을 옹호하고 이민 사회를 극렬하게 비판한 비 미국행위로 지적되었으며 한편으론 FBI 국장 매카시에 의해 끝없이 제기된 공산주의자라는 모함으로 가족 모두가 미국을 등지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더욱이 채플린의 부인인 우나 오닐(Oona OꡑNeill)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렬 보수주의자들을 등에 업은 매카시의 절대권력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비 미국행위 조사위원회는 1930년대 나치의 스파이 활동을 조사하고 감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2차 대전 후에는 구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한 마녀사냥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채플린은 위원회로부터 여러 번 출두 명령을 받았으나 불응했다. 급기야 FBI 국장 매카시가 가세하며 매스컴마저 주무르기 시작했고 모든 매체가 앞 다퉈 채플린을 비롯하여 진보적인 예술가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FBI의 채플린에 관한 파일은 1900페이지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등 진보적인 예술가들과 친분을 유지했던 채플린은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빨갱이 색출 해프닝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19세기 보드빌에서의 풍자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희화화되어 있었다. 채플린의 작품들은 바로 그런 점에서 보드빌 공연에서의 풍자적인 해학극(벌레스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노래와 춤과 연기는 지극히 현대적인 뮤지컬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기발한 페르소나로 만인에게 즐거움과 페이소스를 안겨준 채플린은 진정한 의미의 보드빌리안이었으며 슬랩스틱 코미디로 단세포적인 웃음만을 유발했던 당시 분위기에 해학적인 코미디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유일한 희극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