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야기 4]보드빌(Vaudeville) 액션과 성룡(成龍)

미국의 헐리우드에 입성하기 전까지 성룡(成龍)은 아시아의 톱스타였다. 적어도 액션연기자로써 아시아의 자존심이었다. 그의 무술연기는 마치 보드빌의 아크로바트처럼 항상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다소 가볍지만 낙천적인 배역은 마치 보드빌의 어릿광대처럼 관객들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지만 헐리우드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마치 신인 연기자처럼 無에서부터 출발했다. 작은 체구에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없었던 성룡에게 언어는 커다란 딜레마였다. 그래서 <러시아워>의 출연제의가 왔을 때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거절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아시아에서 통한 그의 연기패턴이 헐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특별한 캐릭터와 안무가 필요했다. 그때 그에게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사람들이 바로 코메디 무성영화의 거장들이었다.

성룡이 열광했던 버스터 키튼의 아크로바틱 묘기들은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 1928)>에 잘 나타나 있다. 거센 바람에 몸이 지탱하지 못할 만큼 떠밀리고 폭풍우에 간판이 날라 가고, 집이 무너지고, 집의 벽체가 버스터 키튼의 몸을 덮치는 위기의 순간에 다행히 열려진 문으로 인해 육포신세(?)를 면하는 아찔한 상황들. 이 장면들은 성룡의 헐리우드 액션 창조를 위한 교과서적인 장면들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숨죽이는 스턴트 장면들과 기막힌 타이밍, 어릿광대적인 슬랩스틱 연기 패턴 등도 결코 표정연기가 다양하다고 볼 수 없는 성룡에게는 헐리우드 진출을 위한 좋은 연구 자료였다.

<상하이 나이츠>나 <프로젝트A>의 시계탑 액션은 오늘날 마치 해롤드 로이드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기억된다. 보드빌 연기가 처음에 어떤 풍자적인 틀에서 출발했던 것처럼 해롤드 로이드의 초기 희극적인 캐릭터는 채플린의 모방 선상에서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후일 비록 채플린이나 키튼 처럼 어릿광대와 같은 작은 체구는 아니었지만 렌즈 없는 뿔테 속에 보여 지는 낙천적인 모습과 수줍어하고 겸손한 그의 캐릭터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국의 빅벤(Big Ben)에서 벌어지는 <상하이 나이츠(Shanghai Knights)>의 시계탑 장면은 바로 해롤드 로이드의 영화 <세이프티 라스트(Safety Last, 1923)>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시계탑 장면을 확대한 것이다. 이미 이전 영화에서도 차용했던 장면이었지만 <상하이 나이츠(Shanghai Knights)>에서는 마치 존경하는 해롤드 로이드에게 작품을 헌정 하듯이 좀 더 확신에 찬 장면으로 재탄생되었다. 성룡 연기의 특성은 마치 보드빌에서의 아크로바트처럼 온몸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액션을 장기로 한다. 성룡이 호텔에서 회전문을 이용해 경관들을 제압하는 장면이나 시장에서의 격투 장면 등은 일면 찰리 채플린의 재림과도 같은 명연기였다. 쫓고 쫓기는 와중에서도 성룡은 마치 채플린의 초기 작품〈이지 스트리트(Easy Street, 1917)〉나 버스터 키튼의 <캅스(Cops, 1922)> 처럼 끊임없는 움직임과 넉살스러움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결코 잔혹하지 않으면서도 화끈한 그의 액션은 항상 즐거움으로 결말을 맺기 때문에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별 부담이 없다. 비록 <상하이 나이츠(Shanghai Knights)>가 흥행적인 면에서 전작들보다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보드빌 연기로 재무장하고 홍콩영화가 아닌 헐리우드 무술영화를 창조하기 위한 성룡의 끊임없는 노력은 높이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