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之賢不肖(인지현불초)譬如鼠矣(비여서의)在所自處耳(재소자처이) 의역하면, '사람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은 쥐와 같으니, 오직 자신이 어디에 처해 있는가에 달렸을 뿐이다.' 입니다.
초나라의 말단 관리 시절, 이사(李斯)는 측간의 쥐와 곳간의 쥐를 보며 인간의 운명을 직시했습니다. 인분(人糞)을 먹으며 사람의 발소리만 나도 사색이 되어 달아나는 측간의 쥐, 그리고 쌓인 곡식을 마음껏 누리며 사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곳간의 쥐. 두 쥐의 능력이 달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어느 자리에 몸을 두고 있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이 준엄한 깨달음은 그를 움직였습니다. 그는 안주하던 고향을 떠나 순자(荀子) 밑에서 제왕학을 닦았고, 마침내 서쪽의 진(秦)나라로 향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자신을 가장 큰 곳간에 던진 것입니다. 그의 안목은 적중했습니다. 진왕 영정(훗날 진시황)의 신임을 얻은 그는 축객령(逐客令)을 철회시키는 명문장을 남겼고, 마침내 천하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며 제국의 최고 정점인 승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환경을 선택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 즉 처신(處身)에 있어 그는 가히 천하의 대가였습니다.
2.권력이라는 곳간, 원칙을 삼키다
그러나 성공의 정점은 또 다른 시험대의 시작이었습니다. 진시황이 급거 사망하자, 제국의 운명을 쥔 곳간의 열쇠는 이사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때 그에게 다가온 인물이 환관 조고(趙高)였습니다.
조고는 이사의 가장 취약한 고리, 즉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파고들었습니다. 강직한 장자 부소가 황위에 오르면 승상의 자리가 몽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협박에, 이사는 결국 흔들렸습니다. 천하를 통일했던 그 명석한 두뇌는 순간 마비되었고, 정의와 신의 대신 권좌를 지키기 위한 거짓 유서 조작에 동참하고 말았습니다.
곳간의 쥐가 된 이사는 어느새 곡식의 맛에 취해, 그 곡식이 자신을 가둘 덫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자신을 귀하게 만들어 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성(品性)과 양심을 맞바꾼 불행한 선택이었습니다.
3.황구(黃狗)를 그리는 탄식, 그리고 남겨진 문장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권력을 독점하려던 조고의 간계에 걸려든 이사는 결국 함양의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에 처해집니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의 손을 잡은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너와 함께 다시 고향 땅에서 누런 개(黃狗)를 이끌고 토끼 사냥을 나가고자 한들, 이제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 끝없는 욕망의 끝에서 그가 진정으로 그리워했던 것은 제국의 승상 자리가 아니라, 고향의 평범하고 소박했던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사의 일생은 “어디에 몸을 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어떤 원칙 위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4.이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2천 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도 이사의 고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더 좋은 곳간, 더 높은 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자신을 이동시킵니다. 물론 환경을 바꾸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환경은 분명 성공의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 환경이 제공한 자리가 내 인격까지 높여주지는 않으며, 그 자리가 주는 명예가 내 양심을 대신해 주지도 않습니다.
능력으로 오른 사람도 원칙을 잃으면 스스로 무너집니다. 자리보다 무서운 것은 그 자리를 지키려는 탐욕이며, 환경이 성공을 도울 수는 있어도 결국 그 성공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은 개인의 지신(持身,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킴)과 품성입니다.
이사의 고사는 우리에게 처세의 비결을 알려주는 입신출세의 서사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출세보다 수백 배 더 어려운 것은 끝까지 바르게 남는 일(善終)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는 뼈아픈 타면교사(反面敎師)입니다. 오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사기(史記)에 기록된 그의 첫마디뿐만이 아닙니다. 그 뒷면에 숨겨진, 피로 쓴 다음의 한 문장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