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비정신 51]늙은 것이 어찌 목숨을 아끼리까

김처선은 세종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일곱 임금을 모셨던 내시이다. 그는 벼슬이 정2품에 올랐는데, 늙은 몸으로 연산군의 횡포를 자주 간하였다. 그리하여 연산군은 항상 불만이었으나 여러 임금을 섬긴 그의 공을 인정하여 자신의 불만을 애써 숨겼다.

연산군이 점차 황음무도(荒淫無道)해지자 김처선은 마침내 뜻을 굳히고 가족들에게 하직인사를 하며 말했다.

ꡒ내가 오늘 반드시 죽는 날이오.ꡓ

그런 다음 그는 대궐에 들어가 연산군의 비행을 낱낱이 들면서 이를 시정해 줄 것을 거리낌없이 아뢰었다.

ꡒ늙은 몸이 이미 일곱 임금을 섬겨왔습니다. 이 몸이 대충 사기『史記』를 읽었습니다만, 지금의 임금 같은 군왕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 나라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ꡓ

그 말을 들은 연산군이 화를 못 이겨 활을 쏘아 그의 갈빗대를 맞혔다. 김처선이 갈빗대에 꽂힌 화살을 잡고 말하였다.

ꡒ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런 늙은 것이 어찌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다만 전하는 국왕의 자리를 오래 보전하지 못할 것이옵니다.ꡓ

연산군이 다시 활을 쏘자 김처선은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연산군은 칼을 들고 다가가 그의 다리를 끊어버렸다.

ꡒ네 놈의 다리가 없어졌으니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지 보리라. 어서 앞으로 가지 못할까!ꡓ

김처선은 다리를 질질 끌며 다시 아뢰었다.

ꡒ전하께서는 다리를 끊기고도 걸을 수 있겠습니까?ꡓ

그러자 연산군은 그의 혀마저 잘라버리고 다시 배를 갈라 창자를 땅바닥에 흩어버렸다. 그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충언을 그치지 않았다.  연산군은 마침내 그의 시체를 호랑이에게 주고 그의 이름인ꡐ처(處)ꡑ자를 입에 담지 못하도록 하였다.

김처선(金處善)

? ~ 1505년(연산군11).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문종 때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단종 때 풀려났으나, 1455년(단종3) 정변과 관련되어 유배된 후 본향의 관노가 되었다. 세조 때 복직되어 1460년(세조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록되었으나, 다시 세조로부터 미움을 받아 장형(杖刑)을 당하였다.

성종으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품계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산군이 즉위하자 직언을 잘하여 미움을 받던 중 1505년에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의 비행을 간하다가, 연산군에 의해 다리와 혀가 잘리고 죽음을 당하였다. 연산군은 그의 양자였던 이공신(李公信)과 7촌까지 처형하고 본관도 없애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