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산 기슭 호병골에는 병풍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그 위에는 외딴 집 한 채가 있는데 50대의 이서방과 노총각 아들 하나가 살고 있었다.
1940년 대만 하더라도 왕방산 기슭의 땔 나무와 가랑잎은 포천 사람들의 요긴한 가정 연료였으며 땔나무를 팔아 생활하는 나무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기도 하였다. 왕방산 기슭 병풍바위 이서방은 마음씨 착하기로 유명하였으며 노총각 아들을 장가들여 서울 며느리를 얻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평소 부지런한 이서방은 힘이 장사였으며 일을 잘하여 늘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산밤, 가얌, 머루, 다래, 어름, 잣 등 다양한 산실과는 이서방에 곡간에 가득하였으며 평자를 일궈 보리, 밀, 귀리, 기장, 조, 수수 등 곡식을 심고 밭 벼를 가꾸는 등 곡식도 풍부하여 부자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겨울 한 철은 땔 나무를 장에다 팔아 돈을 마련하고 며느리 맞을 준비도 잊지 않았다.
포천 읍내 사람들은 이서방을 산신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이유로는 밤마다 이서방은 해와 달을 타고 공중을 날아 다니면서 이 산 저 산을 여행하는가 하면 흰 수염을 길게 휘날리는 산신령들과 장기도 뒤고 바둑도 둔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이서방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바둑, 장기도 곧잘 두었으며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힘이 장사였으며 달리기도 잘 하였으니 신령이라는 소문이 나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마음씨도 착하여 땔 나무를 팔다가 남으면 가난한 독거 노인에게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47년 내 고향 포천 읍내에는 「발진지부스」라는 돌림병이 성행하여 여러 사람이 죽거나 병석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바빠진 것은 이서방 이었다.
ꡒ나물 일곱 접시, 삼색 과일, 그저 정성드린 제물을 준비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정갈하게 목욕을 하는 것은 물론 온 정성을 다 하여 마을 하수도와 변소(화장실)를 깨끗이 청소하고 달 뜨는 밤 달님이 높게 뜨면 달님을 향해 빌어야 합니다.ꡓ
읍내 사람들은 이서방의 말대로 목욕 재계하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서방의 왕방산 산사람다운 정성드린 제사 때문이었는지 얼마 후 읍내에 돌던「발진지부스」돌림병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포천 읍내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였던 생각이 난다.
왕방산에는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혹여 왕방산 이서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지? 생각되여질 때가 많았다.
최근 경희대 서정범 명예교수로부터 「무녀들의 끔 이야기」라는 저서를 받고 읽어 보았더니 ꡐ어찌 그리도 왕방산 이서방 같은 무녀들도 많았을까?ꡑ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조 이성계가 바라보며 옛 친구를 그리워하던 산이어서 인지 전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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