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상계(思想界) 발행인으로 반 독재 투쟁을 하다가 포천 북쪽 등산 중 실족사(失足死)한 고 장준하(張俊河) 선생을 아는 사람은 많다.
장준하님은 학병으로 일제 침략기의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만주로 파견되었으나 탈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광복군이 되어 왜병들과 싸웠는가 하면 박정희(전 대통령)님은 만주군 사관학교(2년제) 일본육사(4년제) 졸업후 중국 북지에서 중국군이나 독립군과 싸웠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고향 포천 출신의 김영관님 같은 광복군에 복무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던 분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영관(金榮觀)님은 1924년 영중면에서 태어났다.
일제 침략군은 한반도 청년들을 일본 정규군으로 강제 징집하여 중국 북부와 만주지방에서 중국군이나 독립군과 싸우게 하였다.
김영관님도 강제 징집되어 일본군 요꼬이부대(橫井 部隊)에 배치되었다.
중국에 배치된 김영관님은 일본군대를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할 기회를 엿보던 중, 요꼬이부대가 1944년10월 절강성 의오현에 주둔할 때 뜻을 같이하는 동지인 김권(金權), 박승유(朴勝裕), 신의철(申義澈), 이희화(李熙和) 등과 함께 왜놈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 사령부 정보처 제3분처에 귀순했다.
광복군 정보 3분처는 한·중 합작으로 합동작전을 전개 건양, 남평 등지에서 대적 활동을 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부대였다고 한다.
1944년 봄 부터는 연산군, 하구진으로 본부를 옮겨 김문호(金文鎬),신정숙(申貞淑)등의 주도로 제3전구 내에서 중화민국군(국부군) 유격대와 합동작전으로 정보선전 선무 공작을 전개하면서 대적 항전 공작을 전개하였다.
특히, 적 왜군 포로를 신문하여 일선 및 후방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공작활동에 유효 적절히 활용하기도 했다.
또 무석, 무호, 남경지구에 있는 왜군(일본 정규군) 부대 내에 우리 한반도 청년들이 다수 배치 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무석 방면에 파견 공작을 전개(초모공작; 招募工作)하여 큰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광복군 유격대, 광복군 정보대 군사정보원으로 그 공이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내 고향 포천의 인물이 없음을 한탄하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이는“나는 무식한 사람입니다.”라는 소리와 같다.
우리 포천 출신 청년 중에는 위의 소개한 많은 광복군, 독립군 대열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바가 있는 사람이 있다.
또 이와 반대로 일본군 장교로 만주 동북방면에 나아가 일본 정규군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만주괴뢰군 군속으로 입대한 사람도 있고 일본 가미가제특공대에 나갔던 함모, 최모씨도 있었으니 역사는 내고향 포천에도 많은 시련기였던 일제강점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