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최고의 축제는 월드컵 응원에서 발견된다.
축구시합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국민 모두를 열광하는 걸까 의아스럽기도 하다.
아마도 잃어버린 축제정신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잃어버렸던 축제에 대한 향수가 발동하여 저토록 응원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간은 태초부터 개개인이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려는 욕구도 있었지만, 사회적인 동물로서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축제를 추구하기도 한다.
모순적 성향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기에 다른 동물과는 다른 문화와 문명을 이루어 왔을 것이다.
우리 민족도 절기마다 자연의 변화에 따른 축제를 얼마나 즐겼던가.
설과 정월 대보름, 답청, 단오, 추석명절 등등 마을 단위로 충과 노래를 곁들이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다.
사실 축제가 없었다면 민족고유의 문화마저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낭만희극은 당대의 축제를 바탕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십이야(Twelfth Night)"이다.
십이야는 크리스마스 휴일의 마지막 밤을 춤과 노래 그리고 게임 등으로 즐기는 축제일로서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관습이기도 하다.
축제는 인간사회의 맺혀있는 부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인간은 개개인의 욕망을 자유분방하게 즐기고자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는 전체적인 질서와 안정을 위해서 천차만별의 욕망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인간의 부분별한 정열로 인해서 뒤엉켜 있는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어, 사랑의 부조리성을 희화화한다.
오시노 공작은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려고 하는 올리비어라는 귀족 처녀에게 감상적인 사랑을 늘어놓는다.
그는 여행 중 난파를 당한 후 남장 하인으로 변장을 하고 성(gender)과 신분을 숨기고 있는 바이올라에게 자신의 연서를 전달하게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정작 바이롤라는 공작에 연정을 품고 고민한다.
또한 올리비아는 오시노 공작의 사랑타령에는 오빠에 대한 조의를 이유로 거절하면서도 남장여인인 바이올라에게 한 눈에 반하여 추근댄다.
관객들은 동성연애적인 연상을 유발시키는 그녀의 희극적 접근을 파안대소로 터뜨리며 즐길 수 있다.
사랑의 혼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바이올라의 쌍둥이 오빠 세바스챤이 난파에서 살아나 이 곳에 가세하면서 더욱 짙어진다.
왜냐면 올라비아가 세바스챤을 바이올라로 잘못 알고 사랑의 공략을 퍼부어 그로부터 승락을 받은 후 자신을 찾아온 바이올라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떼자 소동을 벌였던 것이다.
잘못된 사랑의 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는 신분상승의 환상을 가지고 자신의 주인마님 올리비아를 짝사랑한다.
그는 청교도적 윤리를 내세우면서 올리비아의 삼촌인 토비경의 음주가무를 비난하고 공격한다.
하지만 그의 경직된 자세는 올리비아 집안에 풍미한 축제추구세력과 갈등을 일으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디오니소스적 도취경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토비 일당은 십이야 축제일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파행적 축제행위에 몰두하는데 이 작품의 희극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기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토비경은 에이규치크의 올리비아에 대한 구애를 도와주는 척 하면서 그의 돈을 우려내는 행위라든지, 하녀 마리아와의 신분파괴적 결합을 통해서 축제가 가지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는 축제를 방해하는 자에 대한 징치에 앞장선다.
축제를 즐기는 행위는 규율과 질서로 다스리는 공동체가 본성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시민들의 자연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해서 배려하는 무도덕적인 시간과 공간이다.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욕망의 불만족을 축제를 이용해서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억압당한 욕망은 사나워지거나 왜곡되어서 시민들의 자연성을 손상시키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병들게 한다.
이런 축제의 내재적 효과를 무시하는 말볼리오 같은 위선자는 자신의 욕망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거룩한 체하는 거짓된 연기를 일삼는다.
토비는 말볼리오가 걸려들 덫을 마련한다.
올리비아의 필체를 모방해서 주인마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암시가 담겨있는 편지를 그가 잘 다니는 곳에 떨어뜨려 놓는다.
그는 영락없이 덫에 걸려드는데, 사랑의 조건은 바보처럼 히죽이 웃고, 괴상한 노란 양말을 신는 것이다.
축제를 망치는 그는 꼼짝없이 자신이 경멸하는 광대가 되고 만다.
토비 일당은 뒤에서 숨어서 웃음 참지 못하며, 과장되게 예의를 차리던 말볼리오가 어울리지 않는 광대 짓을 하는 것을 본 올리비아는 그가 미쳤다고 판단한다.
토비일당은 그를 미친놈으로 몰아세워 광에 가두고 공동체에서 격리시킴으로써 축제정신을 위반한 자에 대한 징벌에 성공하는 것이다.
이 극이 낭만희극의 전형적인 결말인 풍요제적 형태를 보여주는데, 엉켜있었던 사랑의 혼돈들이 정리되어 각자 자기 짝을 찾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오시노공작은 남장을 벗은 바이올라와 올리비아는 바이올라로 잘못 알고 사랑을 받쳤던 세바스챤과, 토비는 마리아와 결혼하게 된다.
역시 결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복 받는 사랑의 결실이다.
이 극의 말미에 억울하다고 울부짖는 말볼리오의 이의제기가 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행복한 축제 속에 묻혀버린다.
우리는 축제의 진정한 목적과 역할을 알고, 건전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선용할 수 있는 능동적 축제 참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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