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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173

잊지 못한 「피의 일요일」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30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소련제 탱크를 앞 세우고 중국군 8로군 포병대장 「무정」이 남침 선봉대장이 되여 38선 이남으로 일제히 남침하였는데 대한민국 육군 본부에서는 채병덕 소장(일군 병기병과 장교 출신)이 육군 참모총장이였는데 전날 장교구락부(미군) 개소오푼파티에서 먹은 양주가 아직 깨지 않은 상태에서 일요일 아침 잠을 자다가 6.25의 참극의 서막인 육본 폭격의 첫 보고를 받았으며 38선 경의선 개성 북방 여현역에서 남파 고정 간첩 이주하와 김상용 그리고, 북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외었던 민주인사 조만식장로님과 교환하기로 약속의 날이 바로 전날이 6.25 날 이었다.


내 고향 포천 중동부 전선을 지키던 한국군 7사단 9연대는 장비를 부평에 있는 조병창으로 수리차 이송한 상태에서 6.25 전쟁을 맞았다.


영중면 영평리 남북 교역 북어 더미속에 숨겨졌던 소제 T51 탱크가 6.25발발 점령하고 말았다.


필자는 당시 개성에서 6.25날 04시부터 08시 까지의 남북 전투의 생생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6.25당시 포천중학교 학생이었단 정해관님과 김태진님은 펜 대신 총을 들고 전투에 참가 혁혁한 공을 세우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으며 수천명의 국민방위군 장정들이 경상도 양산까지 굶주림에 허덕이며 남하하여 훈련을 받고 전선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또 당시 육사생도(4년제 특1기) 1기생이었던 김문한님은 육사생도의 몸으로 6.25 전선에 참전 혁혁한 공을 세우고 대령으로 예편하기도 하였다.


당시 7사단 정보부 포천파견대장이었던 전용택특무상사님은 적정정보 수집, 남파여간첩 검거, 왕방산 빨지산 남파 거점책 허모 소탕 대간첩작전, 남북교역, 등 대공정보업무를 수해하다가 6.25를 맞았다.


내 고향 포천은 다른 고장과 달리 6.25 기념물이 많다.


 서부전선 미군 전선은 황해도 연안군, 경기 개성시, 장단군, 개풍군을 38이남인데도 북녘으로 땅을 빼앗겼으나 내 고향 포천은 38선 이북 영북면 이동면 영중면 일부 관인면을 되 찾는 승전의 전과를 올렸다.


백마고지, 펀치볼, 크리스마스고지, 등등에서 싸운 이땅의 젊은이들의 피흘려 싸운 대가였다.


그래서 6.25 묵사생도참전기념비(가산면 우금리) 독수리유격대전적비(이동면 노곡리) 도평리 수복기념탑(이동면 도평리) 자일리 수복기념탑(영북면 자일리) 북진통일로탑(영중면 성동리) 구름내 기념공원(6.25 참전기념탑외) 영중면 6.25참전 기념탑.


내촌면 내리 6.25참전 전사자 추모비 등이 6.25의 비극과 전쟁의 승리를 중언하고 있다.


"누가 6.25를 북침 전쟁이라 했던가?" 정신나간 미숙아 정신병자가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동족끼리의 피어린 전쟁 6.25를 어찌 잊을 수 있을것인가?


6.25 참전용사들의 피어린 공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연락처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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