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覺山 趙永元 先生 功績碑(각산 조영원선생 공적비)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24호
소 재 지 : 창수면 추동리 117-2
규 모 : 높이 178cm 폭 60cm 두께 31cm
선생께서는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서 고종 29년(1892) 5월11일에 출생하였다.
호는 覺山이며 본관은 한양이다.
선생은 溫厚剛直하고 충효가 兼全하였다.
1907년 유신학교를 졸업 후 1910년 庚戌國恥로 조국이 송두리째 日帝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자 선생은 분연히 일어나 당시 民族運動의 本流인 西間島에 亡命중인 石吾 이동령省齊 이시영 선생 등 여러 先輩와 連絡, 國內에서 비밀히 활약하다가 亡國의 痛恨을 품고 1920년 8월 상해로 亡命하였다.
상해에서 선생은 臨時議政院 議員으로 被任(피임)된 후 義烈團 中央委員, 臨時政府國務院 秘書長署理를 역임하였으며 獨立黨促成會委員이 되어 1926년 獨立黨促成會 대표로 만주에 특파되어 만주에서 백야 김좌진 장군의 추천으로 신민부 고문이 되어 해림신창학교를 창설하여 인재육성에 주력하였다.
1931년 이청천 장군을 총사령으로 하는 韓國獨立軍 총사령부를 조직하고 총참모가 되어 남북만주에 散在한 독립군청년동지를 규합하여 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항일구국군총사령 이두에게 교섭하여 한중연합작전을 한 결과 多大한 전과를 거두었다.
선생의 나이 41세 때인 1933년 2월 만주에서 倭警에게 체포되어 死刑시로 服役중 5년간 執行猶豫로 본국에 押送되어 生不如死의 세월을 보내던 중 8.15 광복을 맞이하여 社會團體의 長이나 顧問에 추대되었으며, 1964년 韓國獨立黨 全黨大會에서는 代表最高委員으로 피선되기도 하였다.
1974년 4월22일 83세로 別世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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