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김 순 진
"봉선화(鳳仙花)"는 동농 이해조 선생이 1912년 <신구서림>에서 간행한 소설로, 고대 소설이 가지는 해피엔드 기법으로 양반과 천민의 캐릭터를 동시에 등장시켜 위기에 처한 양반을 천민이 구출하고 이에 양반, 평민, 천민이 서로 부모형제의 연을 맺는다는 점은 근대 과도기적 상황에서 시기적절한 소설이었다고 평가한다.
동농 이해조 선생 역시 인조 임금의 세 번째 왕자인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대원군 집정기에 득세한 왕족가문이지만 왕족을 버리고 서민 편에 서서 특히 부녀자들을 위한 신분타파, 개가, 자유연애 등의 소설을 썼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봉선화"를 모티브로 하여 발단하고 있지만 내면에 깔려있는 스토리는 심리와 사건을 위주로 써내려 간 긴박감이 있는 본격소설이다.
주인공이 한 번도 편안하거나 호식하는 일 없이 계속해서 주인공을 핍박으로 몰아세우며 독자로 하여금 극도의 불쌍함으로 몰입하게 하여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봉선화"가 우리에게 주는 사상은 무엇이며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몇 가지 방법으로 분석하여 보니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말투, 그리고 언어의 사용 폭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뭐니뭐니해도 "신분타파사상"이며 이를 조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몇 가지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첫째, 서울의 배경은 매우 윤택하여 만호 천문에 불빛이 휘황하고 기와집을 짓고 살았으며 전차와 기차가 다녔고 아낙들은 가마를 타고 다녔던 것을 알 수 있다.
한산모시는 당시에도 유명한 특산품이었고, 천민 평민들은 주로 짚신을 신고 비가 오는 날이면 지갓을 우산 대신 쓴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길가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담장에 장미를 심으며 뜰 안에 꽃을 심어 집 안팎을 가꾸기도 하였고, 양반집 아낙들은 소일거리로 주로 바느질을 하거나 소설책을 읽었고, 담배를 피웠던 모양이다.
서민사이에서는 일수, 월수 등의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였고, 지금처럼 개인이 수표를 발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신매매가 성행했음에 개탄한다.
셋째, 양반과 평민 천민 등의 계급이 무너지고 신분 지휘의 고하보다는 정(情)이나 의리가 중요시되는 사회로 옮아가고 있음이 고무적이다.
넷째,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면치 못할 만고의 진리지만 아직 고대소설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섯째, 현대 소설은 인간이 사건을 해결해주지만 고대 소설은 인간이 아닌 전혀 색다른 구조자가 나와 사건을 해결한다.
심청전과 장화홍련전에서 주인공이 물에 빠졌는데 연꽃으로 환생한다든지, 콩쥐팥쥐전에서 참새 떼가 날아와 볍씨를 다 까준다거나, 밑 빠진 독을 두껍이가 나타나 등을 받쳐주어 물을 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새 한 마리가 박씨를 가마 밖으로 나오게끔 유인하고 폴짝폴짝 날아가며 최가에게 박씨를 팔아넘기려는 구두쇠 일행을 따돌릴 수 있게 하는 과정은 고대 소설과 다를 바 없음을 지적한다.
여섯째, 소설 전체에서 주류를 이루는 한자와 한자말들은 양반층을 향한 소설이었음을 지적한다.
그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고 일반사람들이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면 그 사상이 아무리 위대해도 상대적인 효과는 반감된다.
이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주었고, 몇 가지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봉선화」가 우리에게 주는 거룩한 의미는, 당시 아무도 제기하지 못하던 양반과 천민의 주종관계를 탈피하여 신분을 철폐하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사람으로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양반의 신분으로,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난 동농 선생이 이처럼 서민의 아픔을 감싸 안으려고 했던 것은, 선생이 당시 최고의 엘리트로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선각자(先覺者)요 선지자(先知者)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자랑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포천사람이라면 자랑 이전에 그 분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태도부터 우선해야 한다.
이번에 "봉선화"를 읽기 위하여 우리 포천출신 작가의 흔적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개설한 "함평문학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읽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하루 빨리 <이해조문학관>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40권에 이르는 모든 소설이 홈페이지에 올려져, 읽고 싶은 사람으로 하여금 읽고,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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