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향토유적 제20호
소 재 지: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711
규 모: 높이 180cm, 폭 60cm, 두께 32cm
이 공적비는 독립지사 최면식(1891˜1944)선생의 항일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와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 출생지에 공원을 조성 건립한 것이다.
선생은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의 손(孫)으로 호는 염재(念齋), 자는 경소(敬紹),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10년 국치(國恥)를 당하자 국외로 망명, 국권회복을 위해 최초의 독립운동단체인 광복회(光復會)에 참여하시어 수시로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軍資金) 및 무기조달에 전념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차 옥고를 치렀다.
1916년 광복단 조직을 위해 기호지방(畿湖地方)에서 활동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김좌진(金佐鎭), 박상진(朴尙鎭), 노백린(盧伯麟), 채기중(蔡其中) 등과 우의(友誼)를 가졌다.
선생은 독립우동 사명을 띠고 국내에 잠입했다가 목포에서 피체, 2년여의 옥고를 치렀으나 이후 초지일관 만주로 탈출 활약했다.
1921년 재밀입국했다가 광복단 사건으로 대전에서 피체, 무기수로서 공주형무소에서 복역 중 형독악화(刑毒惡化)로 출옥한 뒤 1944년 음력 7월 3일 순국했다.
1977년 독릅유공 대통령포창, 1980년 건국포상(建國褒賞), 1990년 12월26일 건국훈장 애국장(建國勳章 愛國章)이 추서되었다.
공적비는 1982년 포천군출신 독립유공자 공적비 건립위원회에서 세웠는데 비 전면에는 "獨立志士 念齋 崔先生 功蹟碑"라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