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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79

현대의 장유유서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1월 15일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예전에는 마을에서 노인한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졌다고 비통해 했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냥 툭 하시는 말씀에 삶의 지혜가 가득했었음을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강조하신 말씀이 어른들에게 이쁨받는 방법으로 장유유서를 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장유유서(長幼有序)를 미풍양속으로 알고 있지만, 무턱대고 나이 몇 살 더 많다고 어른 대접하는 것은 우리 전통문화가 아닙니다. 

장유유서는 아시다시피 삼강오륜의 하나이지만 맹자에서 ‘의’라고 한 경장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학자는 “장유는 가족윤리인 효제가 가문으로 확장된 것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합니다.

나이가 한두 살 많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은 우리 윤리에도 없는 것입니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 문화에서는 가문의 항렬을 나이보다 더 우선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집성촌 마을에서는 나이가 훨씬 많은 노인이 어린 사람이 지나갈 때 고개를 숙이며 “대부님, 진지 드셨습니까?”하고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대부는 할아버지 이상의 항렬인 사람에게 쓰는 존칭이었지요.

제 선배님 한분은 향교에 갔다가 5, 6세 많은 분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가 핀잔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분은 송나라 유자징이 편찬한 소학 명륜편을 인용하면서 나이가 갑절이면 아버지처럼 모시고, 10년이 넘으면 형처럼, 그 이하이면 친구처럼 지내는 게 우리나라 예법이라며 서로 벗으로 존중하자고 했다고합니다.

조선 때 문신 유희춘도 선조에게 “20세 연상이면 어버이처럼, 10세 연상이면 형님으로 대하고, 앞뒤로 10살 차이는 동류로서 예의를 지키며, 10세 아래면 동생뻘로, 20세 연하면 자식뻘로 여겨 아껴주라”는 향약의 규약을 장려할 것을 적극 권장 했다고합니다.

옛날에는 좁쌀영감과 꽁영감들이 나이 타령을 하면 “수구문 차례”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수구문은 지금의 서울 중구 광희문으로 시신이나 상여가 나가는 문이었습니다.

무턱 대고 나이 몇 살 많다고 어른 대접을 요구하는 것은 20세기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독특한 문화현상입니다. 수직적 군대문화와 선후배를 따지는 학교문화가 해체된 가족문화를 덮으면서 생긴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가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수직적 호칭부터 없애고 이름을 부르게 했던것은 여러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장유유서는 없애야만 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우선, 가문이나 특정 집단에서는 연장자를 존중하고, 그 밖에서는 어른의 지혜를 존경하는 문화는 정착시켜야 합니다. 이때 어른은 경륜이 깊고 폭이 넓은 교양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분을 말합니다.

삶의 깊이와 지선이 자연스러운 주름살과 잘 어울리는 분들을 우리는 현자라고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노인은 사회적 약자로 보호를 해야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장에 기여했지만 부(富)를 쌓지 못하고, 건강도 약해진 분들을 사회 차원에서 배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복지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의 노약자석은 이런 차원에서 있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에서 나이를 내세우며 행패를 부리는 노인을 보면, 나이 차원을 떠나 조용히 양보하는 것 또한 현명한 일입니다.

어른이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사회에서는 나이가 벼슬이 아닙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노인의 권리를 위해서도, 반대로도 해당합니다. 생각이 젊고 사려 깊은 어른, 존경스러운 어른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상큼하고 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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