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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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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주역은 바뀌었어도 수출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중추적 과제라 하겠다.
옛 날을 회상해 보자. 1960∼70년대 고도성장 개발독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수출이었다. 그는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에 각부 장관, 재계 대표, 은행장, 기타 수출유관조직의 대표 100여명을 모아놓고 품목별, 지역별 수출실적 하나하나를 챙기고 질문했다.
무역업계가 온갖 시책과 애로를 호소하면 대통령과 모든 참석자들은 메모하고 관련 부서는 다음 날 사후조치 결과를 보고해야 했다. 연말 때 쯤이면 상공부는 그 해 수출 목표를 달성하려고 불난 집이 되어야 했다. 업계에 수출 관계 공직자들이 총 출동해 매일 선적을 독려하고 실적을 올리는 것을 촉구하고 출혈 수출도 강요하는 등 못살게 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이 총사령관이 돼 온 나라가 수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연 5000만∼8000만 달러를 수출하던 1960년대 초 수출 주역은 광원, 농부, 어부들이었다. 당시 한국은행 입행시험은 한국의 5대 수출상품을 물었는데 쌀, 텅그스텐, 철광석, 생사, 한천(寒天)따위가 정답이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엔 가발, 신발, 방직공장 여직공들이 이들을 대체했다. 원양어업도 한 몫을 했다. 일본 정부는 5년 넘은 어선의 용선(傭船)만을 허용했으므로 우리 기업은 노후된 배를 빌리면서 그 어획물 판매도 일본 선주의 지시에 따라서 해야 했다. 당시의 일본인은 왜소해서 배의 침대는 160㎝가 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체구가 작은 어부만 뽑혀 긴 세월 더럽고 지겹고 고달픈 선상생활을 하다가 운 나쁘면 풍랑에 휩쓸려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아프리카 서해안의 똑똑하고 건강한 우리 원양기지장은 사양길의 일본 원양회사가 파견한 반 푼의 약시(弱視) 직원으로부터 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는 끼니때마다 이 상전을 집으로 모셨고 빨래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야 했다. 금년(2023년) 수출은 약 6130억 달러가 넘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과거의 무역 첨병들은 이제 다 사라지거나 쓸데없는 존재가 됐고 앞으로의 수출은 최첨단 시설과 고급 두뇌들이 담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똑똑해졌지만 과거 그 시대의 애국심,지도력, 화합력과 극기정신은 없어 보인다.
지금은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같은 수출 터전을 얻는 일보다 거리를 점령한 노총을 더 생각하는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주요 수출품이 바뀌고 수출 주역이 바뀌었어도 수출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중추이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지금처럼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선 수출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1960∼70년대처럼 수출전쟁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수출 증가를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애국심과 한국수출 외판원을 자처하며 세계를 누비는 세일즈맨 1호의 역할에 우리의 첨단무기 수출 증가로 국민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든든해하고 있다.
나쁜 세력만 없으면 이 나라는 얼마나 발전하고 좋은 나라가 되겠는가.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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