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그린 최고의 청순한 사랑

운명적인 사랑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 비극 중에서 가장 극명하게 운명에 의해서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파멸에 이르는 전형을 보여준다.

요즘의 세태에서 젊은이들의 사랑이 즉흥적이거나 물질만능적인 타산적 사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흔히 본다.

어찌 보면 사랑이란 한낱 게임이거나 거래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사랑에 목을 매는 모습이 감상적이라거나 전근대적이라고 폄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공을 초월해서 해결해야만 하는 가장 큰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다빈치 코드”는 인류의 최고의 성인인 예수조차도 인간적인 사랑을 피할 수 없다는 명제를 던져주고 있지 않은가

 “로미오와 쥴리엣”이라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비극은 캐류렛과 몬테규 두 명문 가문의 오래된 원한이라는 갈등관계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가로막으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다. 

젊은 세대의 파격적이고 폭발적인 사랑이 구세대의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가치관에 의해서 가로막히는 도입단계는 낭만희극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한 여름 밤의 꿈”의 두 연인처럼 구세대의 걸림돌을 극복하고 혼란의 숲 지대를 빠져나오면 화해와 조화 그리고 풍요의 세계로 귀결되는 낭만희극이 된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러한 행운이 자리 잡기도 전에 줄리엣의 아버지 케퓨렛에 의해서 엄청난 풍랑을 만난 쪽배처럼 위험한 처지에 이른다.  
 
“한 여름 밤의 꿈”에서 연인들이 숲 속에서 쫒고 쫒기는 사랑의 혼돈에 해당하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이 작품에서는 케퓨렛가의 잔치에서 처음 만난 두 연인이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비밀결혼을 하지만 패리스와 결혼하라는 줄리엣 아버지 카퓨렛의 완고한 가부장적 독선과 고질적인 두 가문의 원한으로 인한 머큐시오, 티볼트의 잇달은 죽음과 로미오의 추방은 희극적 귀결에 찬물을 끼얹는다.

물론 이 단계에서 조차 비극으로 기울기에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희미하게 비추지 않는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적인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을 “한여름 밤의 꿈”에서 얼기설기 얽힌 사랑의 매듭을 풀기 위해 오베론이 사용하는 사랑의 묘약(Love Juice)처럼 초인적으로 작용하는 마술의 힘을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의 딜렘마의 처방약으로 선보인다. 

두 연인들의 낭만적 결합을 방해하는 캐퓨렛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항하여 로미오와의 사랑의 맹약을 지키기 위한 신비스러운 묘약으로 쥴리엣으로 하여금 가사상태에 빠지게 하는 비법을 로렌스 신부가 마련한다. 

이 것이 성공한다면 사회의 규약과 가부장제도의 완고함을 피해 풍요지대 숲으로 피신한 “한 여름 밤의 꿈”의 연인들처럼 로미오와 쥴리엣도 사랑의 도피여행을 통해 자유분방한 사랑의 풍요지대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보수적 사회나 완고한 가부장보다 더 강한 운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로렌스 신부가 로미오에게 보낸 편지가 우연적 사고에 의해서 지체되며, 로미오는 쥴리엣의 가사상태를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자결을 하고 마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것이다.

 그야말로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간발의 우연에 의해서 좌우되고 만다는 자연주의적이고 운명론적인 삶의 진리를 처절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로미오와 쥴리엣"의 주제는 단연코 "사랑의 위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가지 사랑 중에서도 때 묻지 않은 지고지순한 청춘남녀의 사랑을 선택하였다. 

쥴리엣의 나이를 십사세로 만든 것도 쥴리엣의 이미지를 이제 막 돋아난 새순 같은 청순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요, 로잘린에 대한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로미오도 이성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청년의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쥴리엣을 중심으로 패리스와 로미오가 경쟁하는 삼각관계(Triangle)를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적인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운명적인 사랑(star-crossed love)은 어떤 제도나 관습, 돈과 권력으로 막을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 앞에는 인력으로 제거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장애물이 막아서고 있다. 

사랑에 빠져있는 두 연인이 극복해야 할 대상은 원한 관계에 있는 캐퓨렛과 몬테규라는 두 가문, 이미 권력의 반열에 서있는 패리스 백작의 정략적 구혼 그리고 부친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관습이다. 

극 속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녀는 가차 없이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서 축출을 당할 수밖에 없는 매우 허약한 존재일 뿐이다.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은 그들의 세속적인 굴레나 기득권을 단숨에 던져버리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랑의 가치를 끝까지 고수하는 숭고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사랑은 가족이라는 헐연 관계도, 패리스 백작이 상징하고 있는 돈과 권력도, 심지어는 티볼트나 머큐시오의 죽음도 아무런 걸림돌이 될 수 없다. 

그 것들이 일시적으로 사랑을 훼손할 수 있지만 두 연인들은 그들의 사랑을 한 단계 더 숭고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운명적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의 어떤 힘도 가로막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낭만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두 연인의 사랑이 죽음의 힘으로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고 분석할 수 있지만, 그들의 위대한 사랑을 지켜보는 관객의 가슴 속에는 영원한 사랑의 이미지로 남아있기에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은 불멸의 영원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은 요즘의 젊은이들의 사랑 못지않게 현대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젊은이들의 사랑이 패리스의 정략적 계산이나 캐퓨렛과 몬태규 두 가부장의 권위적인 힘에 무릎을 꿇는다면 오히려 로미오와 쥴리엣 보다 훨씬 전근대적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으리라. 

우리의 삶 속에서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은 칙칙한 물질 사회에서 얼마나 상큼한 청량제가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