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부사의=이규임] 99대(對)1의 기적(奇蹟)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기적(奇蹟)이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나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일을 말한다. 기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이원익(李元翼) 대감 사이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파격적(破格的)인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우수영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가 있는 그 울타리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節度使)로 임한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장수(將帥)를 보고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리는 없는 것이다. 1597년 2월 원균(元均)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 통제영(統制營)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國刑場)이 열리고 선조(宣祖)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文武百官) 200명 모두가 외친다. “아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떵하옵니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읍조(揖朝)하며 임금을 압박한다. 이순신을 발탁(拔擢)해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柳成龍)도 반대하지 못한다.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의견에 함몰(陷沒)되고 만다. 당시 이순신의 누명(陋名)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 가는 대목이다.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영의정(領議政) 겸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 대감 때문이었다. 국가비상사태 총사령관인 이원익(1547~634)이 임금의 어명(御命)으로 전시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어 임금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전시 상태에서는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 외쳐도 이원익의 승낙 없이는 선조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이원익은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말로 고한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에 선조도 체념한다. 이틀이나 걸린 국형장에서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 라며 명을 거두었다.

 
오직 한 사람의 곱고 바른 판단과 집념으로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된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 대 1. 이원익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해 이순신을 살려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받든 공복(公僕), 그가 있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니 말해 무엇하랴. 소박하고 비범한 대표적 청백리(淸白吏), 초가집에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이원익 대감(大監)’이 무한 그립다. 

세월은 400년이 지나고, 시대만 수없이 변했을 뿐 정치는 변한 게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 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 통에서는 더 힐 나위 없었을 것이다.

 
온갖 시기질투와 모함으로 사형 직전까지 간 만고(萬古)의 충신을 알아보고, 홀로 그를 믿어준 탁월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의 굳은 신념이,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의 사직을 지켜냈으니, 오리(梧里) 이원익 대감은 그야말로 만고에 길이 빛나는 충신이며 나라의 보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가 아니라 단 한 사람 이원익이 나라를 구했기에 하는 말이다. 

단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하다. 생각해 본다면 이순신 장군은 행복한 분이셨다.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오리 대감과 같은 분이 그 시대에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오리 대감은 88세로 눈을 감으시면서 모든 자식들을 불러놓고 “나를 위해 부고도, 알리지도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祠堂)이나 칭송(稱頌)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라고 유언한다. 그러기에 오리 정승은 우리에게 잊혀져있었는지도 모른다. 당당했던 청백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묻고 싶다.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