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포천신문 |
|
포천독수리유격대 기념 사업회 30여명 지난 4월 29일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젔던 제천 지역 목행리 전투 전적지 순례를 다녀 왔다.
6,26전쟁 당시 군번이 없다는 이유로 현역이 감당하기 어려운 작전은 독수리 유격대가 도 맡아서 수행을 해오던 중 1950년 12월 중순경 지휘관들이 전투를 가장 잘하고 있는 독수리 유격대를 서로 자기 부대원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부대를 이탈 시켜 놓고 현역 군인도 아닌 민간 유격대가 부대를 이탈 하였다며 제천 목행리 남한강변(달래강)인근 연초 창고에 감금을 시키고 1951년 2월 6일 도망병으로 몰아 대장 최종성과 작전관 최종철등 간부 5명을 불법으로 총살 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 순례길에서는 70년이 지난 제천 목행리 일원은 고속도로가 신설되었고 부근이 도시화가 되어 총살 현장을 찾아 볼수가 없었다.
총살 직전 최종성 대장은 51년 2월 6일(움력설날)아침으로 떡국을 먹고 집총한 현역들에게 호위되어 대원들에게 쓰고 있던 털모자와 장갑을 벗어 주며 우리는 반공을 위하여 뭉첬고 나라을 위해 싸우려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절대 흗어지지 말고 나라를 위해 끝까지 잘 싸워주기 바란다며 강금 되어 있던 제천 목행리 연초창고 뒤로 현역병들에게 끌려가 대한민국 만세 소리와 함께 수십여발의 총성과 함께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나머지 58명도 군에서 보급한 신발과 피복을 모두 벗긴채 알몸으로 적진으로 추방되었으나 추방된 58명은 최종성 대장의 말씀대로 다시 또다른 부대를 찾아 다시 전쟁에 임하게 되었다.
독수리 유격대는 민간인 신분이였기에 전과를 올려도 현역 부대원의 몫이 되고 유격대원이 전사나 피해를 입어도 근거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군번없는 용사로서의 외롭고 힘든 의병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윤춘근 회장은 이들에게 6,25전쟁당시 어느곳에서 어떻게 싸웠으며 전과(戰果)가 어떻고를 따저 볼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국군에게 억을한 죽임을 당하면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첬다“ 지휘부의 충심과 엄동설한(嚴冬雪寒)속에서로 벌거벗겨저 적진(敵陳)으로 추방을 당하고서도 다시 총을 들어 대한민국 수호에 나섰던 독수리 유격대의 투철한 애국 정신이 증명 된다는 게 국방부 전사편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며 유격대원 63명중 지휘부 5명 아군에의 한 총살 11명 전사등 총 16명이 전사처리 된상태이며 현재 비무장 지대인 373고지에 전투중 전사하신 9명의 유해가 발굴되지 못하고 있다며 포천의 영웅이며 대한민국의 영웅인 독수리유격대의 희생정신을 정치권이나 포천시에서도 이분들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 했다.
또한 독수리 유격대 봉사단장을 맏고 있는 홍영순 단장은 다시는 전쟁이란 글자도 되새기고 싶지 않다며 63분의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천시민이 함께 해줄 것을 당부 했다.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
 |
|
| ⓒ 포천신문 |
|
이무일 포천신문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