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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해조의 <소학령> 탐구

홍을표 (이해조문학회장, 포천중문의과대학 사무처장(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5월 01일

Ⅰ

<자유종>으로 대표되는 애국계몽의 작가 이해조는 1912년 이후 신파 번안 작가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고전의 세계로 회귀하였다.

그는 합방 이전의 교육사업과 사회활동을 통한 계몽운동을 접고 오로지 작품 생산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실제로, 1911년부터 1912년에 걸쳐 매일신보에 숨쉴틈 없이 연재된 소설 중에, 멕시코 이민을 다룬 1911년의 <월하가인>과 노령 이민을 다룬 1912년의 <소학령>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소설이 고소설을 개작한 작품들이다.

이 시기 그의 창작에의 몰입이 우리에게 탄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이야기(narrative)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욕구와 그 상징은 무엇일까?  

이해조의 작품 <소학령>은 우리 문학사 최초로 노령 이민을 다루었다.

이 작품은 1905년 무렵, 포천에서 서울-부산-원산-청진-해삼위-소학령-유정커얼-추풍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이해조의 고향인 포천에서 시작하여 포천에서 막이 내린다.

첫장면은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지맥이 바로 포천 축설령에서 좌우로 갈라져 수락산과 삼각산을 이루는 지세의 묘사와 포천 송산의 고을 정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포천의 몰락한 양반 출신 주인공 강한영은 노동력을 팔러 노령으로 간다.

나중 그곳으로 가족을 불러들이만 이것이 고난의 길로 인도한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그리던 가족과의 상봉을 이루어졌으나 조선인 부락의 민장 부부의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을 당한다.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간 모은 돈으로 귀하게 장사지내고 그들의 유복자를 데리고 가족과 함께 포천으로 낙향한다. 

강한영이 이국 땅 노령에서 고생한 보람도 없이 맨손으로 귀향하여 고향에서 천대받고 있을 때 그가 노령 땅에 머물 때 집주인이었던 홍구여는 강한영이 남겨둔 족자를 한 서양인에게 4만원이라는 고가에 팔아 돈을 부친다.

갑자기 부자가 된 강한영에게 고향 친구인 최진사가 모함하여 죄인이 될 지경에 빠진다.

이 때 강한영 가족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악인 방인철과 한 패였다가 강한영의 관용으로 회개한 안국삼이 강한영의 죄 없음을 입증하여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이 소설의 제목인 ‘소학령’과 주제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소학령’(巢鶴嶺,  옛 발해의 서울 동경성이 있던 곳)은 해삼위에서 추풍을 넘어가는 관문이다. 

‘소학령’은 남편 강한영과의 상봉 길에 넘어야 할 고개이고 또한 자기가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 민장 부인이 구해주었던 곳이다.

소학령은 만남과 헤어짐의 고개이고 생과 사의 고개이다.

우리 민족의 생과 사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마치 학이 알을 품기 위해 모여드는 듯한 포근하고 고결한 느낌을 준다.

민장과 그의 부인은 고고하게 학처럼 죽었고 강한영 가족과 그들을 도운 안국삼과 홍구여는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귀향한 고향 포천 송산은 그들의 보금자리이고 학들이 모여 사는 곳이리라.

처음 포천 송산의 강한영의 집은 “연기 한 점 아니 나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어 한이 없이 적적하고, 오직 수없는 잠자리가 울 가지에 가 앉았다 날았다 마당 위로 뒤덮여 빙빙 돌아다니”는 곳이었으나, 나중에는 지난 역정에서 인간적 정의로 맺어진 새로 이룬 세 가족과 더불어 네 가족이 다복하게 모여 사는 새로운 둥지로 변했다.

II

이 소설의 화자의 입을 통해 “그때는 지금같이 문명한 시대가 아니라.”고 말한 것을 최원식 교수는 ‘이해조의 결정적인 변신’의 증거로 지목하나, ‘문명’과 ‘합방’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일관된 관점은 이 소설 어디에서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비극의 극복도 타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인간성이라는 본질적 해결을 구하고 있는 주제 의식을 상기할 때 보다 분명해 진다.  

<소학령>의 신파활극적 요소가 ‘신소설의 자체 붕괴의 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지적도 있지만,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일탈 군상을 등장시켜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의 고난을 냉정한 안목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다.

평안도 사금 광부 출신의 인색한 신개척 객주 주인, 춘천 출신 부두노동자 행세의 육혈포 강도 방씨 형제, 충청도 완고한 선비 출신의 민장 유씨, 소년 소과 출신으로 정치 부패에 강개분울하다가 무고로 옥살이 하는 서진사, 칠십노모를 데리고 간도에서 부랑자로 떠도는 안국삼 등은 바로 백년 전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다.

이들 인물을 통해 당시 민중들의 바램과 희망이 무엇이었는가를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나라는 잃었지만 시대는 금전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고 금전이 매개되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슬픔과 기쁨의 휴머니티가 온전히 드러남으로써 이 작품의 소설 미학의 붕괴와 계몽적 비전의 상실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III

식민지 시대를 전후하여 이해조 문학을 분절하여 볼 것인가, 아니면 통합하여 볼 것인가?

이질성은 무엇이고 그 동질성은 무엇인가?

계몽과 유희, 애국과 문명개화, 근대와 전통,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등 그 모순 속에서도 이해조의 정체성은 견지되는가?

자아는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예술 중에 가장 난해하고도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자아가 정신을 지배한다면 이야기(narrative)는 인간의 정신적 기능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상징으로 간주된다.

즉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 영역의 핵심 사상이다.

인간의 발달은 곧 이야기의 발달과 함께 간다고도 한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이론과 사상은 단지 사회적 구성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설이 이러한 한계 범주에서 운위된다면 이해조 문학의 단절과 통합도 그가 속한 사회적 구성의 불가피한 한계에 귀속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그의 소설적 파탄을 야기한 과도한 창작 몰두 행위도,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해 내려는 욕구와 아울러 자아의 정신적 내상(內傷)과 식민지 백성의 민족적 외상(外傷)을 동시에 치유하려는 그의 문학적 상징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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