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최초의 약사는 구생약국의 구본유약사로 양약방이나 약포는 있었으나 약국은 구생약국이 최초의 약사 약국이다.
포천 초·중·고교를 졸업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여 약사가 되었는데 효자로서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포천 최초의 약사가 되었다.
그리고 최초의 이발사는 중앙이발관의 김갑봉씨(자작리 거주)였는데 해방 후 최초로 실시한 이발사 시험에서 우수한 기술자로 인정받아 합격. 동두천, 의정부, 전곡, 포천 등지에서 스카웃되여 인기있는 이발사라고 유명했다.
14세부터 55세까지 41년간 종사하다 승리이발관을 끝으로 이발·이용업계의 정년을 맞았다.
최초의 모범 운전기사는 신북면 가채리 출신의 함모씨(함원규씨 부친)로 경기도지사에게서 수여받은 모범운전기사 표창장을 대청마루에다 걸어놓고 ‘안전운전의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며 좋아하던 생각이 난다.
일본사람들도 놀라는 운전 및 차량정비 기술자로 칭찬이 높은 모범운전기사였으며 늘 점잖고 근엄하였다.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하여 주희의 시를 비유하여 시를 읊었던 포천 최초의 등산가는 면암 최익현 선생이었다.
포천 최초의 소설가는 동농 이해조선생이셨으며 포천 최초의 3·1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소흘읍의 축석령만세 운동이었다.
포천의 최초의 선거관리위원장은 포천감리교회 목사였던 고명균 목사님이셨다.
포천 최초의 장군은 육군 중장 강창성(육사8기)님이셨다.
최초의 반공유격대장은 독수유격대장 최면택님이었다.
최초의 국문학박사는 정동화총장님이고 이학박사는 정장훈 명지교수(오하이오 주립대)이고 최초의 공군 장성은 허항무장국(공군소장, 통신가) 최초의 범죄수사단장(육군준장 CID)은 채문기준장이었다.
최초의 영문학박사는 한양대 부총장 이성호박사(피츠버그대)이며 최초의 경찰학박사 1호는 이병곤 부산경찰청장(동국대 경찰학과)이었다.
최초의 외교관은 호주대사 송영식님(현 축구협회 부회장)이었고 최초의 보건행정박사는 이경호박사(보건복지부 차관)이고 최초의 경영학박사는 이한융(동의대 대학원장)박사이고 미국 최연소 심장내과 최고인기교수상겸 전문의(33세)는 이한중박사로 미국 119구급대 창설자이며 봉사단장이다.
포천의 최초의 지방 언론인은 문정명 동아일보 포천주재기자겸 지국장이며 최초의 아나운서이자 방송기자는 박태웅 MBC스포츠기자로 한국의 스포츠기자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포천 최초의 한의학박사는 이수호 박사로 현재 미국에서 침구학, 한의학 등 7개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한의학을 빛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