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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포천출신 소설가 이해조 탐구

대중적 소설을 모색하다 - 구의산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4월 12일


대진대 국묵학과 정흥모 교수


1. <구의산>은 매일신보에 1911.6.22-9.28까지 연재되었으며 1912년에 신구서림에서 출간되었다.

“구의산에 구름 쌓이듯 한 의심이 환연히 해석되어 차례로 판결을 할 터인데…”라고 한 데서 보듯, 이 작품의 제목은 의문의 사건이 풀려나가는 과정을 서술한 작품의 진행에서 따온 듯하다.

당대에 유행하던 ‘공안(公案) 모티프’·‘송사(訟事) 모티프’를 차용하여 대중들의 눈길을 끌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구의산>의 핵심내용인 ‘계모의 악행과 그에 따른 고난, 그리고 해결’ 구조는 전래 설화와 고소설에서도 자주 보이는 모티프로서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를 맞이하자 계모는 그를 학대했다.

계모는 그를 장가가는 날 죽이기로 하고, 매수한 종에게 신방에 든 의붓아들의 목을 베어 오라고 했다.

종은 신부집으로 가서 신랑의 목을 베어 가지고 왔다.
신부는 남장을 하고 신랑집 근처로 가서 조사하여 범인이 계모임을 밝히고 시아버지께 알려 누명을 벗었다.

시아버지는 계모를 죽인 다음 유랑의 길을 떠났다.

신부는 신랑의 목을 시신과 함께 장사지내고 유복자를 낳아 길렀다.

신부는 장성한 아들의 노력으로 시아버지를 찾아 모시고 잘 살았다.

첫날밤에 종이 신부집으로 가서 몰래 신랑을 불러낸 다음, 가는 도중에 죽인 다른 남자의 시체를 신방에 넣어두고 돌아와 계모에게 거짓으로 말하고 신랑과 함께 멀리 도망가 숨어 살다가 마지막에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하게 사는 내용으로 변형된 이야기도 있다. 이해조의 신소설 <구의산>은 변형된 설화의 구조와 같으며, <조생원전>과 <김씨열행록>이라는 고소설은 첫날밤에 신랑은 죽인 설화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구의산>은 이야기의 구조와 소재면에서 전래설화와 고소설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표현방식에서도 유사점이 많다.

예컨대 작품의 후반부에 나오는 법정 장면에서, 신부인 애중이가 남편 오복이를 확인하기 위해 “제 남편은 왼편 겨드랑 밑에 녹두 같은 무사마귀 두개가 나란히 있으니, 당장 웃옷을 벗기고 조사해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 같은 것들이다.

조선후기의 고소설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전란 등으로 헤어진 부부가 우여곡절을 거쳐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재회할 때, 서로의 신체적 특징(엉덩이에 점이 있다거나 어깨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다는 둥)을 기억하여 만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비유나 소재의 참신성 등에서 문제가 있지만, 이해조의 소설이 전통문학의 일정 측면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소재나 비유의 참신성은 결국 독자들의 생활·문화 환경이 참신해져야 가능하기 마련인데, 작가의 선도적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해도 1912년이라는 시간적 공간은 아직도 구시대적 문화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겠다.

2. 그러나 구도와 소재, 표현방식 등에서 고소설의 문법을 다수 차용하게 된 것은 이해조의 초기 신소설이 이룩했던 문학적 성과에서 일정부분 후퇴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본 기자가 십여 년 광음을 소설에 종사할새 구소설의 부패한 언론이 지금 이십세기 시대에 맞지 아님을 깨닫고 … 신소설 체재를 발명하야 이미 이삼십 종의 소설을 저술한 바 … 독자 제군만 그러실 뿐만 아니라 저술자도 … 지리한 생각을 금치 못하니 … 소설 체재를 또한번 변하되 신구를 참작하야 구소설의 허탄맹랑함은 버리고 … 신소설의 친근각삭함은 바리고 … 소양정이라난 소설을 저술하노니(매일신보. 1911.9.29).

이를테면 이해조는 ‘소재의 고갈’과 ‘창작의식(문제의식)의 무뎌짐’을 느낀 것이다.

이것은 국치 이후 이해조가 매일신보의 기자로 들어간 다음에 매일신보에 연재한 작품 목록을 통해서 그 원인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해조는 1910년 10월 12일 <화세계> 연재를 시작한 이후 거의 쉼없이 소설을 창작했다. 매일신보 문예면의 소설파트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내용과 소재, 형식을 실험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고,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911년 이후 고소설의 번안이나 개작소설이 많아지는 것과 ‘이인직 류의 신소설’로 후퇴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사실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애국계몽기의 소설에 나타났던 긴장이 사라진 셈인데, 주권상실로 인한 좌절감이나 지속적인 의식의 긴장을 못 이긴 일종의 피로감, 현실과 타협 등등의 이유도 작용했을 터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달라진 사회정세에서 과거 방식의 계몽주의가 맞지 않음을 느끼고 좀더 대중적인 문학(소설)을 써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품 경향을 전환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식민지 시대에 창작된 이해조 소설의 변화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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