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대지의 이미지, 그 사이에 변함 없이 인간을 품고 있는 관대하며 무한한 공간, 작가의 세계는 바로 그 공간의 드러냄에 의해 고무된다.(중략)
이동용은 풍경을 다루면서도 자연주의와는 가장 거리가 먼 형식을 취한다.
그의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모방도 아니고, 추상적인 도식화나 권태로운 동어반복도 물론 아니다.
그의 풍경은 자연에의 맹목적인 이끌림도 아니고, 작가 의식의 절대적 투사도 아니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자신으로 끝나기를 소망한다. 자연은 그의 변함 없는 모티브이지만 그것은 영감의 문을 여는 문지기일뿐, 끝까지 도달해야 할 여정에서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심상용 미술평론가가 이동용 교수의 1997년11월3일‘이동용 조각전’카다로그에 ‘동질성의 미학과 그 유기체적 질서에 관하여’란 평론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1998년 대진대학교에 부임한 이동용(46·사진) 교수는 김포 송정초등학교, 공항중학교,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나왔다.‘대지와 하늘의 이미지에 관한 조각 작품 제작 연구’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교수의 작품세계는 공간에 대한 문제를 표현하는데 있다. 물질과 공간의 문제, 공간의 기운에 관심을 갖고 비어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비어 있는 것에 대한 작품을 연구한다.
빈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교수가 지난해 가진 전시회는 부적·민화와 같은 염원이 담겨져 있는 의미를 차용해 왔다. 스테인레스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염원을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한다.
어떤 염원일까를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어 냈다.
시골담장 마감질하던 미장이들이 미술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화가들도 그렇게 작품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매체위주의 조각을 교육한다. 석조, 목조, 금속조, 점토 등의 일상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하도록 한다. 큰 틀에서 보면 기본적인 재료로 수업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 미술발전을 위해서는 찾아다니는 미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미술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찾아 다니는 미술 프로그램이 있다.
지원이 필요하다.
돈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역에 한정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질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요구된다.
오지로만 다니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군데만 찾아다녀도 활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장주민과 함께 하는 미술이 필요한 시대다. 질적으로 다소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교수는 클래식음악의 경우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수 없는 음악이다.
이것은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음악을 접한 후에 차원 높은 세계를 표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중요하다.
故백남준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다면 그렇게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백남준씨가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철학적 마인드를 갖추었다면 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 마인드의 결여는 그를 1인자로 추앙하기에는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이 교수는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작품에서 자기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4회의 개인전을 통해 처음에는 물성과 공간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미지 위주의 공간에서 파이프를 쪼개는 것의 의미다.
내부공간으로 시각적 파장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 파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전시회 작품은 재미있게 염원을 담아내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소박한 시각으로 단순화 시키기도 하고 나의 서정으로도 풀어나간다.
앞으로는 흙을 재료로 작품을 구상해 보고 싶다는 이 교수는 작가로서 설 수 있는 자리라면 언제라도 나가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나가고 싶다고 한다.
심상용 미술평론가는 이동용 교수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간결하고, 조용하다. 완고한 질서를 제안하지만, 그 완고함은 언제나 휴식을 지향한다.
그의 작품이 수직적인 방위를 지니는 경우에도, 예컨대 반성이나 긴장 따위가 수반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수평이나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예민한 선들은 대부분 그 완만한 굴곡으로인해 작품 전체의 긴장을 한 톤 아래로 누그러뜨린다.
그의 거의 유일한 물료인 메탈의 냉혹함은 이같은 도상학적 조율에 의해 약간 모성적 감성 쪽으로 치우친다.
이따금 한치의 오차 없이 엄격한 직선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그것은 무한히 뻗어나가는 영웅적인 역동성을 웅변하지 않는다. 칸딘스키는“직선의 방향성이야말로 휴식의 폐쇄”라고 했지만, 이동용의 직선들은 어는순간 그 방향성을 상실하고 기꺼이 전체속으로 삼투된다.
선들은 거의 언제나 하나의 실체로부터 조용히 갈라져 나왔다가 다시 저항없이 원형으로 융합된다.
그것들은 대지로부터 파생되거나 자연스럽게 대지와 접지된다.
그것들의 부드러운 흐름에 의해 작품은 때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대지와의 상관관계 안에 놓이게 된다.
때로, 분할돼 나온 선들 중의 하나가 동체와의 재합류를 포기한 채 공간 속의 항구적인 흔들림으로 잔류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