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무리 중에는 ‘왜가리’라는 새가 있어 소리를 ‘꽥꽥’ 질러서 특이(特異) 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의 고향(古鄕) 포천의 악동(惡童)들은 소리를 잘 지르는 보기 흉한 노인(老人)을 가리켜 왜가리 라고 불렀다.
마침, 우리들이 모여서 놀기 좋은 마당 중에 장마당, 수만네 마당. 소리 잘 지르는 왜가리 할아버지네 마당이 겨울 놀이 마당으로 유명했다. ‘왜가리 할아버지’는 우리가 모여서 자치기도 하고 구슬치기 놀이도 하면 낮잠을 깨운다고 큰소리로 우리들을 내 쫓았다. ‘저기 가 놀아! 이놈들아! 낮잠도 못 자게 떠든단 말이냐!? 한 참 재미있을 무렵 파장이 되어 수만에 마당으로 쫓겨갔다. 8.15 해방 무렵 구읍 좌의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왜가리 할아버비도 이사를 갔다.
손자는 5학년까지 포천 신읍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군내면 청성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왜가리 손자’는 이름 대신 부르는 별명이었다. 경복중학교를 입학하고 경복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 법대, 사법고시, 군 법무관, 장관, 국무총리까지 관직에 오른 왜가리 손자는 내 고향 포천의 국회의원이 되고 6선의 다선 의원이 되더니 2021년 타계 하였다.(국립묘지 대전 현충원 안장)
포천 최초의 사법고시 합격자인 그는 지금도 이름을 부르거나 관직을 안 부르고 ‘왜가리 손자’라고 부른다. 1934년 12월 6일 생이니 아직 생을 누리고 행복을 구가 할 나이인데 타계 하였으니 아쉽고 그립다.(보고 픈 고우다) ‘왜가리 손자?가 죽었다면서? 정말 그랬다. 포천을 세상에 알리고 총리 공관을 구경(求景)시켜 준 ’왜가리 손자‘는 그렇게 저 세상으로 갔다.
아들은 대학교수로 그 명성이 높다. 그런데 ’채(蔡)씨‘ 문중(門中)의 모친(母親)을 둔 ’왜가리 손자‘였기에 포천이 잊지 못할 명인(名人)이 되고 내 고향 포천(古鄕,抱川)을 빛나는 고을로 만들고 타계하여 국회의원 자리를 가평(加平)으로 빼앗기고 말았다. 언제 왜가리 손자 같은 명인(名人)이 태어날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