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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 24

임금도 사람을 아무나 뽑아 쓸 수는 없다고 직간(直諫)한 정경세(鄭經世)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3월 10일

광해군(光海君)은 즉위하자마자 당시 이조판서였던 성영(成泳)을 파면 시켰다.

이에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은 그 후임으로 세 사람을 추천하였으나 광해군은 모두 물리치고 다시 추천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신흠(申欽...후에 대학자로 영의정까지 역임하였음)을 추천하였는데 광해군은 다시 물리쳤다. 광해군이 왕비의 외숙인 정창연(鄭昌衍)을 추천하였는데 이조판서로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창연이 이조판서에 오르자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외척의 권세가 강하여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 때 정경세는 대구부사로 있었다.

그는 분개하여 임금에게 여러 번 상소를 올렸다.‘임금이 어떤 사람을 미리 마음에 담아두고 만일 천거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천거하라 이르시니 전하께서 개입하여 마음대로 올리고 낮추고 하는 것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왕을 옹립한 자로 자처하면서 지금 그의 아들은 무슨 벼슬에 있고 어떤 사람은 전하를 보호한다면서 그 자신은 어느 벼슬에 있습니다.’다였다. 광해군이 상소를 보고는 버럭 성을 내며 명하였다.


 ‘정경세가 임금을 비방하여 죄를 주고자 하나 선비의 바른 말을 막는 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그대로 두겠노라’그러자 대간들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그때 임연이 임금의 뜻을 간파하고 말했다. ‘임금이 사람을 쓸 때는 어진 사람을 쓰되 일단 결정되면 신하는 그 이유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정경세가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임금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하였다. 그러자 광해군이 매우 성을 내면서 말했다. ‘정경세는 신하로서 왕의 허물을 함부로 드러냈으니 먼 변방으로 쫓아내라’하였다. 정경세는 결국 파면되고 말았다.

정경세(鄭經世) 1563년(명종18)∼1633(인조11)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 1582년 진사에 뽑히고 1586년 문과에 급제 후 승문원에 들어갔다.

여러 벼슬을 거쳐 경상감사 양해부사가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높았으나 당쟁이 심화되자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1607년 다시 벼슬에 나갔으나 정인홍(鄭仁弘) 일당의 탄핵으로 해직되었다가 인조반정후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의 관직을 거치면서 국정에 전력을 기울였다. 경전에 밝고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어 많은 제자와  저서를 남겼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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