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주부명예기자단 소흘읍지부 명예기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나름대로 지역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과 글쓰기 실력을 발휘하여 정리한 작품들이 소흘읍의 현주소를 기록하여 후대의 귀한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주)
 임경순(주부명예기자단장)
세상의 모든 어머니! 사랑해요 이웃을 위해 사랑을 나누는 일 계속돼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또 주신 어머니께서 뇌혈관 질환으로 누우신지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혼자서는 먹고, 입고, 씻을 수도 없는 상태. 누구의 도움 없이는 365일 침대에서만 살아야 한다. 그런 당신을 생각하면 매일 매일을 불효한다는 마음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 가득하다. 잘 해 드려야 하는데.....
멀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함에 가슴이 아리고 순간 순간 눈물이 핑 돈다.
몇 년 전인가. 포천신문과 인연을 맺으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자혜원, 정혜원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을 나누는 일 등을 시간 나는 대로 하고 있는데, 지금도 참 잘 시작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어머니께 대한 빚 때문이겠지.’그래서 내가 당장 힘들어도 소외된 분들을 더 찾는지도 모른다. 용서받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정말 어머니는 살림하는 천사이다.
71세가 되신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일평생을 우리 자식들을 위해 살림을 해오셨다. 어머닌는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셨다. 자식을 살리신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어머니의 모습이 회복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치 지도자들이나 경제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나 교육을 책임지는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의 모습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아파하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살리는 일은 잘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포천땅에서 살리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살림을 잘하는 천사가 되었으면....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이많이 생겼으면 한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춥다.
살리는 일을 하는 천사들이 많이 나타나 따뜻한 웃음을 보여줬으면.....
포천의 어머니들이여! 포천의 아내들이여! 우리는 살리는 일을 하는 천사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사랑해요.
 이효정(주부명예기자단 소흘읍지부장)
소흘읍 지부를 위하여 신개념의 자유토론 도입 필요
이른 봄을 즈음하여 모임에 대한 나의 느낌을 몇 자 적어본다.
2월10일 소흘읍지부 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갖는 모임이다보니 많은 사람이 참석치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부족했던 부분도 없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속상함이 더 컸다. 비록 많지 않은 회원이 모였지만 분위기도 좋았고 화기애애한 느낌마저 들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은 열심히 하겠다는 열의와 각오가 대단했으며 나 자신 또한 새로운 각오로 임하다보니 지역사회 발전과 모임에 대한 애착이 들었다.
안건을 내고 토의를 하다보니 서로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고 소심한 생각의 의사도 있었으며 더러 의견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 앞으로는 신개념의 자유토론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오늘과 같은 각오로 임한다면 송우지부 기자분 모든 분들이 같은 마음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더 좋은 기사거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라고 믿는다.
저 역시 미흡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해 지부장으로서 포천지역의 발전과 지부를 위해 더욱 헌신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백경식(주부명예기자)
소외된 이웃 많아 도움 손길 절실 “독거노인 위한 따뜻한 손길 기다립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사는 곳은 송우 주공4단지입니다. 우리 단지에는 어렵고 소외된 독거 노인분들이 많이 살고 계십니다.
부녀회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손길이 다 못 미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푸드뱅크를 통해 도시락을 나눠주고 대영물산에서도 빵을 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시고 계십니다.
포천신문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합니다.
어렵고 힘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그래도 4단지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조금이나마 나의 부모님이라 여기시고 따뜻한 손길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포천신문 관계자를 비롯해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형숙(주부명예기자)
아파트 공동체는 참여가치의 첫걸음 민주적 운영 시스템 확충 내부적 역량 키워야
송우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는 그 위용이라도 과시하려는 듯 긴 그림자를 드리워 낙조를 삼키고 만다. 허나 그 모양새만큼 과연 참다운 주거문화가 창출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며 여기저기서 볼멘 목소리만 귀를 어지럽히고만 있다.
1930년 일제강점기, 서울 충정로에 우리나라 최초의 유림아파트(4층)가 건립되었고, 1960년대 대도시 지역의 심각한 주택부족문제는 택지부족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주택(아파트)의 건설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 및 인접지역에 ‘신시가지’,‘부도심’등의 대단위 주거단지가 보편적으로 정착되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주택 유형별 구분이 있어서 신규주택 공급중 아파트가 78%를 차지했다.
이와 같은 현재의 아파트 주거를 통해 형성된 주거의식과 주거환경이나 주거생활은 오늘날 도시의 생활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이에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의 이해관계 및 일상생활과 직결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된다.
이 문제 가운데 입주자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는 아파트 관리, 특히 관리비 사용 부과와 이에 따른 의사결정 및 집행기구로서 입주자 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의 운영 등과 관련한다.
월평균 5~20만원에 달하는 가구당 아파트 관리비 지출은 대규모 단지 경우 전체비용이 1억원대에 육박하며 이러한 관리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아파트 공동체는 참여가치의 첫걸음이다. 불협화음이 다반사고 외부에 쉬쉬하느라 숨도 못쉬고 민주적 토론문화가 실종된 권위주의적 독단과 불신의 악순환이 이 아파트 문화에서 영원히 추방되고 자치회의 전문성과 민주적 운영 시스템의 확충으로 내부적 역량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송우리는 지금 아마 큰 열병을 앓고 있는 듯 하다.
아파트가 출·퇴근자의 ‘베드타운’이자 콘크리트 옹벽에 둘러싸인 폐쇄성과 익명성 등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삶의 질과 지역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는 시각이 널리 확산되어지는 요즘이다.
자치회의 민주적 운영 및 입주자의 참여의식, 지방자치 단체의 지원, 제도적 장치마련 등 지구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우선 아파트 내부의 민주적 의견수렴 및 의사소통 구조의 대화창구 마련이 시급하다.
신뢰를 통해 참여가 싹틀 수 있다는 논리와 공적인 가치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면 지금의 이러한 갈등에서 벗어나 이 콘크리트 숲에서도 고향냄새를 풍길 수 있지 않을까?
돼지 통바베큐가 단지마당에 준비되고 삼삼오오 짝지은 이웃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그림을 그려본다.
 이종실(주부명예기자)
포천의 관문 축석고개 분수대 설치 포천시 상징조형물과 함께 관광포천 이미지
문화시대라 할 수 있는 오늘날, 관광문화의 발전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우리의 포천! 아름다운 자연의 환경을 골고루 잘 갖춘 포천시를 말한다면 첫째로 공기 좋고요, 둘째로 산 좋고요, 셋째로 물 좋고요, 넷째로 인심 좋지요.
우선 포천시로 들어오는 43번 국도은 포천시의 관문, 아니 길목이랄까. 축석 검문소 앞 우측에 예전에는 커다란 범바위(효자바위)만 덩그러니 서 있을 때는 분위기가 돌처럼 굳어진 듯 차갑게만 보였지만 지금은 로터리에 신호등도 개설되고, 아름다운 포천시의 마크로 조형물도 만들어 세워지고, 그 옆 초록색 작은 공원 위에는 예쁘게 조경도 잘 가꾸어져 있고, 작은 벤치도 몇 개 갖추어진 예쁜 쉼터로 꾸며져 있지요.
여기에 분수대가 설치된다면, 봄이면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고, 여름이면 시원한 분수대 물줄기가, 가을이면 빨갛고 노란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늘푸른 소나무. 얼마나 아름다운 환경일까요.
그러면 포천시를 오가는 사람들의 쉬어 가는 여유 있는 공간으로, 맑고 깨끗한 환경을 갖춘 청정의 도시로 포천시의 이미지를 과시할 수 있을텐데...
포천시의 상징마크로 세워진 조형물 가장자리로 동그랗게 분수대가 들어서면 어떨까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강옥자(주부명예기자단 감사)
사랑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자 서로가 베풀면서 사랑으로 사는 세상 기대
내가 살아가는 힘은 사랑 때문이다. 나를 지탱하게 하는 것도 사랑 그 자체이다.
나는 몇 해 전에 며느리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랑으로 감싸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친구 같은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이자 이제는 협동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나는 꽃집을 여러 해 운영하고 있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가족 간에 사랑으로 뭉쳐서 지금껏 지내왔다. 벌써 나이가 50이 넘어 있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넥타이에 양복차림으로 나서는 남편을 볼 때면 “당신 새신랑 같애”하면서 애교도 부려본다. 그리고 “당신 사랑해”라고. 예수님도 사랑을 첫 번째로 내세우셨다.
믿음도 좋고 소망도 좋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그리고 또한 포천신문에서 하는 불우이웃돕기도 사랑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십시일반으로 동전 모으기며 주머니를 털어 성금으로, 이 모든 일들이 사랑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메마른 세상에는 사랑으로 더 크게 베풀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임다영(주부명예기자)
새터민에 관심과 교육 절실 모두 함께 살아가는 작은 발걸음
포천송우주공4단지에는 새터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곳에 오기 전에는 하나원에서 정착을 위한 기본생활 교육을 받고 여기로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생활습관과 의식구조, 가치관의 차이로 본인들도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읍 또는 시 차원에서 관리를 하시고 계시지만 가까이에서 접하는 우리들이 볼 때는 몇 십년을 살아온 생활습관이 몇 개월의 교육으로 그들의 의식구조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터민을 관리하시는 분들의 꾸준한 관심과 그들의 의식구조를 바꿀 수 있는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정착금을 지급하는 것으로만 끝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혹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수박 겉핥기식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닌 정말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걱정하는 관리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작은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명순(주부명예기자)
교통사고로 죽은 개의 운명 도로에서 죽지 않도록 관리해야
일동 매바위 있는 동네 부근에서 있었던 일이다.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지인의 집을 방문하려 가는데 5군단 근처쯤 가다보니 도로에 개가 세 마리 모여 있었다. 길을 가는 차조차 피해서 가기에 몰던 차를 세우고 다가가서 보니 개 한 마리는 누워 있고, 두 마리는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서 지키고 있었다.
개 한 마리가 차에 치었던 것입니다. 차에 치인 개는 도로를 흥건히 적실만치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죽은 개를 안 치우면 다른 두 마리 개마저 차에 치일 것 같아서 죽은 개를 도로 옆으로 끌어냈다.
누군가가 치우지 않으면 다른 차들이 또 밟고 지나가고 만신창이가 되겠지.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번 죽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겠지”하는 연민에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개가 죽어서 다시 환생해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쉬이 떠나지 않았다.
병술년 개띠 해에 개 주인들은 도로에서 개들이 죽어 가는 일이 없도록 잘 관리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김광자(주부명예기자)
봄이 오는 소리 따스하게 피어나는 노오한 수선화
무척이나 차가운 바람과 함께 친 구되어 하늘에서 내려오던 하얀 눈! 그리고, 춥디 추운 동장군과 함께 “아이 추워”하면서 어깨를 움츠리던 지난 겨울!
2006년 병술년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 두 달이란 세월을 무심히 보내 버리고 어느덧 봄을 알리는 춘삼월이 내게로 다가서고 있어.
아직 녹지 않은 하얀 보석 같은 얼음 속으로 졸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 물소리에 봄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어제는 봄을 재촉하는 빗소리에, 오늘은 노오란 수선화가 봄을 알리듯 방긋이 웃고있는 소리에, 지금은 아득히 잊혀져 갔지만....
지난 소녀시절,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게 피어나던 노오란 수선화!
수선화! 네가 피어나는 소리가 있음으로 나의 소녀시절을 느낄 수 있었어. 산뜻했던 봄 기운을 내 마음에 새로이 간직하게 해주는 봄에 피는 수선화여!
진한 향기를 담은 커피를 마시며 지나간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어.
 김기호(주부명예기자단 고문)
기억하고 싶은 일들 나는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한 살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신 어머니는 우리 오남매의 가장이 되셔야만했다. 세상살이와는 멀리 계셨던 어머니는 얼마나 황당하고 절망적이셨을까? 홍천의 이진사댁 외동딸로 자라 곱게 시집와 호강속에 사시던 어머니도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부등켜 안고 있을 수만은 없으셨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여 한글을 깨우칠 무렵 어머니와 장마당 앞을 지나면서 나는 동양기름집이라는 간판을 무심코 읽었는데 어머니는 순간 무척 대견하셨던지 나를 안고는 등과 엉덩이를 두들겨 주셨다. 나는 엄마가 한글을 모르신다는 것을 오랜 시간 후에야 알았다. 그 때 엄마는 얼마나 이 막내가 신퉁방퉁했을까?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어떠한 힘든 일로 우리 오남매를 부양하셨어도 결코 내색 한 번 안하셨다. 내 기억으론 생선장사, 소금장사, 과일장사, 옷 장사등
어쩌면 지나간 추억이나 기억들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희미해지거나 망각 속으로 묵혀질 수 있지만 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나 내가 몹시 아플 때면 또렷이 떠오르는, 내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형상이 있다. 20대 초반, 갑자기 쓰러져 청량리 부근 성바오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늘 곁에 계시던 어머니가 아침이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날도 역시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무심코 보던 나는 순간 찡하는 전율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병원정원 앞 마리아 상 앞에서 어머니는 합장을 하며 오로지 빌고 계셨다.
그건 부처님, 마리아님의 사랑을 넘어서 어머니의 참사랑이요 자식애의 극치 그 자체였다. 아마도 어머니는 당신 숨소리라도 딸 대신이라면 망설임없이 바치셨을 것이다.
병명이 확실치 않던 나는 오십이 되도록 이렇게 건강하게 지낸다. 어머니의 효험 때문에 지금 나는 87세된 어머니와 함께 그 사랑을 9살된 딸에게 이어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먼 훗날 내 딸도 이 엄마의 사랑을 기억해 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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