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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 23]최익현(崔益鉉)의 위정척사(衛正斥邪)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3월 02일




리   효  종
한국한시협회 포천지회장


1905년(고종42년) 치욕의‘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최익현은“위정척사”를 실천하여 참 선비의 도리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을사조약을 결사반대하며 매국5적을 처참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고 상경하려 하였으나 왜병들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 이에 최익현은 팔도사민(八道士民)에게 포고문을 보내어 우리민족이 역사적 전통에 비추어 당당한 자주 민임을 밝히고 왜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는 오직 궐기투쟁만이 있을 뿐이라 하였다.

1906년2월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창의(倡義)를 위하여 호남으로 떠나면서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와 기일본정부서(寄日本政府書)를 발표하였다. 창의토적소에는 ‘국가패망의 때를 당하여 여러 동지와 더불어 주기로 싸우기를 결심하고 의기(義氣)를 높이 들여서 장차 북상코자 한다. ’는 내용의 것으로 구절마다 애국충정의 염이 가득하여 가슴을 저리게 한다. 최익현을 따르는 의병군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총을 든 사람, 창칼을 든 사람등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국충정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그들 의병군은 정읍, 곡성, 순창 등을 중심으로 크게 위세를 떨쳐 나갔다. 순창에 주둔하였을 때 관군의 습격을 받아 의사(義士) 정시해(鄭時海)가 순절하자 교전상대가 진위대임이 확인되자 조선인끼리는 싸울 수 없다하여 최익현은 지체 없이 의병군의 해산을 명했다. 의병들은 통곡하였으나 최익현은 ‘어찌 동족끼리 서로 싸울 수 있겠는가’하였다. 그러나 간악한 일본헌병은 무저항 최익현과 그 제자 13명을 구금하였다가 서울로 압송, 일본군사령부에 감금하였다.

조선통감부는 최익현을 조선 땅에 두고서는 유림들의 저항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대마도로 압송한다. 최익현은 대마도에 도착하면서부터 이 지경에 이르러 너희들의 음식을 먹고 너희들의 명령에 따르는 것도 의(義)가 아니니 지금부터는 단식하겠다고 선언하고 고종에게 유소를 썼다.

죽음에 임한 신 최익현은 대마도 경비대안에서 삼가 서쪽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상소를 올리옵니다. 설사 저들이 신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하여도 신은 차마 그들이 주는 것을 먹고 입고 배를 더럽힐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고인들이 먹기를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택하기로 하였사옵니다. 신의 나이 74세, 죽은들 그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바라건데, 국사가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 마시고 군왕의 덕을 분발 하시어 믿어서는 아니 될 일은 믿지 마시고 더욱 자주의 계획을 굳혀 영원히 의뢰하는 마음을 끊으시고 세상의 형평을 살펴 그 가운데서 할 일을 선택하오소서.

면암 최익현은 굶어 죽으면서도 임금의 분발을 촉구하는 직언을 했다. 그는 정학(正學)과 정도(正道)를 지키고 사학(邪學) 이단을 물리치는 이른바 위정척사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장서서 행동해 보였다는 점에서 지식인의 귀감이 되었다.
면암 최익현이 왜국 땅 대마도에서 식음을 전패하면서 남긴 유시(遺時)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숙연하게 합니다.

기첨북두배경루(起瞻北斗拜樓)  일어나면 북두를 우러르고 입금계신 곳에 절하면

백수만삼분제류(白首蠻衫憤悌流)  흰머리 오랑캐의 옷자락에 분한 눈물 쏟아져 흐른다네

만사불탐진부귀(萬死不貪秦富貴)  만번을 죽는다해도 부귀는 탐하지 않으리

일생장독로춘추(一生長讀魯春秋)  평생을 읽는 글이 노나라의 춘추라네

평생을 읽는 글이 노나라의 춘추라고 되어있는 대목은 느끼게 하는 바가 너무 커서 백번을 읽어도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역사를 소중히 하는 마음 역사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이 있었기에 신하의 도리, 어버이의 도리, 스승으로서의 도리, 제자로서의 도리를 충실하게 다할 수 있었다. 직언직필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면암 선생이 그리워진다. 학행일치(學行一致), 지행일치(知行一致)하는 참 선비의 모습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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