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 신북 출신으로 국군보안사령관과 초대 해운항만청장을 역임한 강창성 前국회의원이 지난 1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927년 포천 신북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50년 육사 8기로 임관해 중앙정보학교장, 보병 제5사단장과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다. 1960년 육사 동기생들이 주도한 5.16군사혁명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비영남 군맥으로는 드물게 박정희 前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38세에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는 등 軍요직을 두루 거친 후 1976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80년 초까지 해운항만청장으로 재직했다.
고인은 신군부가 권력을 장학한 1980년 2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만나 “집권욕을 버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가 그해 7월 부정축재자로 몰려 2년반 동안 옥고를 치렀다.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강 前의원은 당뇨병을 얻어 74kg이었던 몸무게가 54kg으로 줄어들었다.
82년 가석방으로 출소했으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 도쿄대으로 유학을 떠났고, 軍閥(군벌)연구에 몰두했다.
고인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의 軍脈(군맥)과 사조직 연구의 명저로 평가받는 ‘한국.일본 군벌정치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87년 귀국해 명지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국회 12.12쿠데타 국정조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80년 신군부 단죄에 적극 나섰다.
또한 고인은 97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겨 제15대 대통령선거 공동선거대책위원을 맡았으며,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재선하고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을 역임한 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 주겠다’며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봉죽(75세) 여사와 재형(국민대 교수), 규형(명지대 교수), 정현(예원학교 부장), 재연, 정민씨 등 2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8일 오전 8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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