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중기의 문신 병자호란때 인조 남한산성 호종 신도비 1669년 建立, 비문 송시열, 글씨 심익현 作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8호
·소재지: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22
·비고: 白江 李敬與 先生
이경여(李敬與 1585∼1657) 선생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봉암(白江·鳳巖). 본관은 전주(全州). 목사 수록의 아들이다. 선조 34년(1601) 사마시. 광해군 1년(168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검열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失政)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인조반정 후 부수찬 부교리를 거쳐 청주목사·좌승지·전라도 관찰사를 지냈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는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했다.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참판으로 대사성을 겸임하여 선비 양성의 방책을 상진 했고,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인조 20년(1642) 배청친명파(排淸親明派)로 몰려 청나라 심양에 억류되었다가 귀국 후 우의정에 올랐다. 이후 청나라에 사은감으로 갔다가 한때 억류되었고 영중추부사로 민희빈 강씨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유배되기도 했다. 효종 즉위 후 영의정이 되었으나 청나라의 압력으로 영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 났으며 저서로 백강집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묘는 정경부인인 풍천 임씨와 합장되었는데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우측에 묘비 좌우에는 동자문인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현종 10년(1669)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심익현이 글씨를 썼으며 김만중이 전(篆)했다.
신도비는 八作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비좌(碑座)를 갖추었고, 비신의 재료는 대리석이다. 규모는 높이 266cm, 폭 99cm, 두께 35c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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